다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가 다시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의 중심에 섰다. 한 때 ‘나는 꼼수다’의 인기가 절정일 때는 ‘나꼼수’가 의제를 설정하고 <조선일보>가 이를 방어하는 위치였지만 다시 전세가 역전됐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여러 번 나꼼수에 파상공세를 펼치던 조선일보는 김용민 총선 출마 이후 욕설파문을 결정적으로 활용해 나꼼수를 무력화 시켰다.
<조선일보>는 ‘주폭(酒暴)과의 전쟁’을 설파해 경찰을 움직이고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2탄은 ‘예단(禮緞)과의 전쟁’이다. 결혼 예단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촉구한다. <조선일보>가 ‘착한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저의는 간명하다. 이슈의 하한기인 여름철에 비정치적인 이슈를 활용해 이슈주도력을 확장해 대선에서 다시 주도권을 갖자는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하는 것일까. 수구적인 <조선일보>가 의제 설정 기능을 되찾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은 바로 홍위병이다. 손수조, 이준석, 백요셉 등 젊은 홍위병을 활용해 이슈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1966년5월17일 <인민일보>를 통해 봉건잔재를 타파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완성해야 한다며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곳곳에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고 명해 정적을 제거한 마오쩌둥처럼 <조선일보>도 홍위병을 활용해 야권을 무력화시켰다.
<조선일보>는 손수조를 활용해 문재인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이준석을 활용해 김형태 의원과 문대성 의원을 탈당시켰고 백요셉을 활용해 임수경을 공격하며 종북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가히 천의무봉의 솜씨였다. ‘2030’ 청년비례 대표를 선출한다며 호들갑을 떨던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 아닌 새누리당의 20대 리더를 부각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곳이 바로 <조선일보>였다.
손수조는 <조선일보>가 발굴하다시피한 20대 리더다. 무명의 정치 초년생 손수조를 발굴한 <조선일보>는 그녀를 효과적으로 부각해 야권의 강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에게 치명상을 입힌 ‘인간어뢰’로 양성했다. 조선일보의 후광을 입은 손수조는 현정권 실세 등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공천을 따냈고 문재인은 그녀와의 김빠지는 승부(이겨도 남는 것 없는)에 묶여 ‘낙동강 벨트’를 사수하지 못했다.
<조선일보>의 손수조 활용전략은 새누리당의 이미지 변신 전략과 괘를 같이한다. 새누리당은 광고 카피라이터인 조동원을 영입해 ‘나쁜놈을 미친놈으로 보이게 해서 나쁜놈인 것을 잊게 만든다’는 허허실실 전략으로 이미지 전환에 성공했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뀐 당명은 ‘새무리당’ 등 이상한 명칭으로 패러디되고 당 로고는 비데를 연상시킨다는 비난을 들었지만 그런 비난 속에 과거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전횡이 잊혀졌다.
이준석을 활용해서는 김형태 의원과 문대성 의원을 효과적으로 견제했다. 당시 <조선일보>가 이준석의 입을 빌어 적극적인 이슈 파이팅을 하지 않았다면 김 의원과 문 의원의 문제는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준석을 활용해 이들의 문제를 집중 부각해 결국 새누리당 지도부의 판단을 바꾸고 자진 탈당을 유도해냈다.
마지막 ‘인간어뢰’인 백요셉은 <조선일보>의 이슈파이팅 능력이 예전의 화력을 회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조선일보>는 단순히 막말 당사자인 임수경 의원을 공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종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국민 비호감 정치인으로 찍힌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의 종북적 행태를 지적하며 종북 장세를 열며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이런 ‘인간어뢰’들의 활약에 고무된 것일까. 조선일보가 요즘 부각하는 단체는 전국대학총학생회장모임(전총모)라는 ‘반 한대련(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세력이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경기동부)의 홍위병 역할을 한대련 출신 대학생들이 폭력사태를 유발했다고 공격한 <조선일보>는 대안세력을 부각하며 이분법적인 대립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오쩌둥의 홍위병은 ‘봉건잔재 타파’와 ‘사회주의혁명의 완성’을 내세웠지만 기실 마오쩌둥을 위한 권력투쟁을 대신해줬을 뿐이다. <조선일보>의 ‘인간어뢰’도 마찬가지다. 약한 20대 문제제기자와 강한 야당 정치인을 대립구도로 만들어 그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매도한다. 그 와중에 이명박 정권의 비리와 박근혜 의원의 전횡은 잊혀 진다. 자신감에 찬 <조선일보>, 과연 이번 대선도 <조선일보> 뜻대로 될 수 있을까?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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