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독자 vs 시사IN 독자
조선일보가 독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시사IN이 독자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이번 '이외수 혼외아들'에 대한 보도라고 생각한다(자세한 내용은 월요일에 발간되는 시사IN 295호를 참고하세요).
조선일보는 지난 한 달 동안 '이외수 혼외아들'에 대한 보도를 집중적으로 했다. 관련 보도 횟수는 이렇다. 최초 보도한 경향신문 4회, 지역 일간지인 강원일보 3회, 스포츠조선 2회, 조선일보 27회. 조선일보에는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그리고 '이외수부'가 있는 것 같았다.
이걸 보면서 '1등 신문 조선일보는 별걸 다 일등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한 달 동안 다른 신문들이 2~3회 보도할 때 27회 보도하는 것이 조선일보가 독자를 바라보는 수준이다. 기사 가치 판단이야 다를 수 있지만, 노소설가 사생활에 대한 집착이 1등신문의 비결이었다.
조선일보가 최근에 쓴 이외수 관련 기사의 제목들이다. 이것도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는 게 함정이다.
이외수 혼외子,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허자경 기자
이외수, 혼외아들 소송 첫 공판 후 "처음부터 생떼였으니…" 허자경 기자
'트위터 대통령' 이외수, 혼외아들 논란 우정식 기자
이외수, "신문이 '이외수 죽이기'에 열을 올린다"며 허자경 기자
이외수 "포털 게시판에 '이외수' 세 글자만 올려달라" 허자경 기자
혼외아들 친모 "이씨, 임신 6개월에 아이 떼자며…" 감혜림 기자
트위터 그만하라고 한 이들에게 "닥쳐… 정면 돌파하겠다" 조선닷컴
李씨가 청소원이라고 했던 女는 혼외아들의 母 감혜림 기자
이외수씨의 婚外아들 측 "李씨와 합의한 적 없다" 감혜림 기자
"이외수, 혼외아들 출생 직후 입양기관에 맡겼었다" 허자경 기자
[단독] 이외수 혼외 아들 "친구에 딱 한 번 고백했는데…" 감혜림 기자
# 스포츠조선 2회 vs 조선일보 27회
시사IN은 조선일보만큼 '이외수 혼외아들'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시사IN 독자들이 그런 것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다른 신문사보다 이에 대해 10배의 기사를 쏟아내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것 같아 이 문제를 취재했다.
이외수씨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그의 사생할에 대해서 보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한 달에 27번이나 보도하는 것은 그 언론사의 자유일 수 있다. 지면이 남아 돌아서 보도한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하지만 27번이나 다룬다면 사실관계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조선일보는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혼외아들 생모의 이야기만 검증 없이 내보냈다.
이 사건은 혼외아들의 생모측에서 '밀린 양육비를 내라'는 소송을 제기해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리고 혼외아들과 관련해 생모가 몇 가지 과거사를 얘기하면서 이외수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그런데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 취재해본 결과 사실관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조선일보의 이외수 죽이기, 한 달 동안 융단 폭격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 감성마을에 살면서 트위터로 소통하며 ‘감성 멘토’로 꼽혔던 소설가 이외수씨가 갑자기 ‘국민 파렴치범’이 되었다. 혼외 아들이 있었는데 생모 몰래 입양기관에 맡기려 했고,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서 양육비 반환 소송을 당했다는 것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그를 겨냥해 “혼외 자식 두고 진보의 대표인 양 설쳐도 되느냐”라고 비난했고 <조선일보>는 4월 한 달 동안 기사와 칼럼을 총동원해 그를 융단폭격했다. 이에 이씨는 사실관계가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며 마녀사냥에 굴하지 않고 사회 현안에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맞섰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도대체 26년 전 이외수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관계부터 정리해보자. 일단 이씨는 혼외 아들을 두었다. 1987년 9월에 태어난 그 아들은 생후 이틀째에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겨졌다(석 달 후 생모가 다시 찾아왔다). 아이의 생모는 이외수씨의 부인에게 양육비 포기 각서를 써준 적이 있다. 올해 2월 초 생모가 양육비 관련 소송을 이씨 측에 제기했다. 여기까지는 이씨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사실에 허구의 살을 붙였다. 이씨가 생모 모르게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겼고, 이후 양육비 포기 각서를 강제로 쓰게 했으며, 아이가 자랄 때 제대로 찾지도 않고, 양육비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게시판과 트위터에는 이씨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반대의 움직임도 있었다. 이씨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유명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보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왜 장관 후보자나 국회의원보다 소설가의 사생활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느냐는 주장과 트위터 등에서 사회문제에 강한 발언을 하는 이씨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4월29일 이씨와 혼외 아들의 생모 오씨 사이에 합의 조정이 이뤄졌다. 소송은 취하됐고 법적 다툼은 끝났다. 이씨는 <시사IN>에 그동안의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일부 언론이 사실이 아닌 보도로 사건을 왜곡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5월2일 감성마을에 찾아가서 그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이씨가 말한 내용에 대해 오씨 측의 반론도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일보> 등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도 재검토했다.
1) 밀린 양육비 2억원을 주기로 해서 합의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은 이번 사건이 해결된 게 이씨가 양육비 2억원을 주고 혼외 아들을 호적에 올리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양자가 합의한 법원 조정안의 문구는 이렇다. “원고(오 아무개씨)는 2005. 10.까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약속된 오○○의 양육비를 피고(이외수씨)가 지급하였음을 인정한다.” 그동안 양육비가 지불되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혼외 아들의 생모 오 아무개씨가 ‘밀린 양육비 3억2000여만 원 중 2억원을 선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해서 벌어진 일이다. 오씨의 변호인이 주장한 양육비의 산정방식은 서울가정법원의 양육비 산정기준표를 따른 것이었다. 이씨의 소득이 월평균 600만원 이상이므로 월평균 136만8000원씩을 부담하는 것으로 해서 240개월(20년)어치를 계산하면 3억2832만원이 된다며, 오씨의 변호인은 이 돈을 청구했다.
이 주장은 합당할까? 일단 이 산정기준표는 2012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1987년 태어난 오씨의 아이에게 적용하기는 무리다. 무엇보다 이 산정기준표가 적용되려면 이씨가 오씨 측에 전달한 양육비가 전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씨는 오씨가 아이를 입양기관에서 데려온 뒤에는 매월 30만원 정도씩, 그리고 열 살 무렵부터는 매월 50만원씩 보내왔다. 1993년 오씨의 남동생이 이사를 갈 때는 출판사에서 선인세로 받은 돈 2000만원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씨 측은 이런 식으로 보낸 돈 가운데 증빙이 가능한 금액만도 9000만원 정도라고 했고, 그 자료를 법정에 제출했다.
이씨의 양육비 송금은 아들이 만 18세인 2005년 10월에 종료된다. 이에 대해 이외수씨의 아내 전 아무개씨는 “송금이 늦어질 때면 오씨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연락이 안 되었다. 그래서 송금을 중단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씨는 “2005년 말에 경주로 이사를 가서 전화번호가 바뀌기는 했다. 하지만 계좌는 그대로 썼기 때문에 돈을 보내려면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씨는 왜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소송을 낸 것일까? 이씨 측이 보내준 돈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오씨는 “돈을 보내준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돈은 아이 양육비가 아니라 생활비나 위자료로 생각했다. 아이와 관계는 있겠지만 양육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2) 이외수는 아이를 강제로 입양기관에 맡겼다?
언론은 오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씨가 아이를 강제로 입양기관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제왕절개수술을 마친 오씨가 마취에서 깨어나기 전 이씨가 강제로 입양동의서에 지장을 찍어 홀트아동복지회에 아이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홀트아동복지회 측에 입양 과정과 관련해 문의를 했다. 동의서 한 장 들고 가서 아이를 놓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담당자는 “지금처럼 체계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최소한 두 가지는 만족시켜야 했다. 하나는 산모가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담원이 산모와의 상담을 거쳐서 입양에 대한 판단을 한다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상담원과의 상담 부분에 대해서 오 아무개씨는 “홀트아동복지회 직원을 만난 기억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당시의 결정은 모두 이외수씨가 주도적으로 했다. 나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3) 이외수는 혼외 아들에게 소홀했다?
언론들은 이씨가 혼외 아들에게 소홀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를 보면 임신을 외면하고 있다가 출산할 때 찾아와 강제로 입양하려 한 것처럼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이씨는 “그 무렵 춘천집이 아니라 서울에서 오씨와 주로 지냈기 때문에 아이와도 함께 있었다. 아이가 고통에 대한 반응이 느려서 벽에 부딪치고도 한참 뒤에야 아픔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것을 모티브로 작품을 써보려고도 했다. 춘천집에 가느라 헤어질 때마다 아이가 너무나 서럽게 울곤 해 그냥 안 보고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프지만 헤어졌다”라고 말했다.
혼외 아들과 관련해서 중요한 부분은 아들로 인정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씨는 “다른 자녀들에게도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동생이 있으니 가족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되었을 때 호적에 넣어야 학교에 갈 수 있으니 내 호적에 올리겠다고도 했다. 당시 오씨가 본인 호적에 올려도 된다며 괜찮다고 해서 올리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혼외 아들에 대한 부분은 1980년대 후반에 여성지 등을 통해 이미 여러 번 기사화된 적이 있다. 오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이씨와 이런저런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부자간의 관계에 대해 <조선일보>는 160만여 명의 팔로어를 가지고 누리꾼과 소통한 이외수씨가 정작 아들과는 소통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이씨는 “<조선일보> 기자들은 부자간의 소통을 트위터로 하는가? 나는 아니다. 소송 때문에 다시 연락이 되었을 때 아들에게 전화를 건 적도 있고 오프라인 만남을 하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통화하지 못했고 만남은 언론 보도로 사건이 알려지면서 불발되었다”라고 말했다. 오씨 역시 “이씨가 아들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합의 과정에서 만날 약속이 잡힐 뻔한 적도 있기는 했다”라고 확인해주었다.
4) 이외수는 무책임하게 취재를 회피했다?
이번 혼외 아들 사건을 보도하면서 가장 집요했던 언론은 <조선일보>다. 4월 한 달 동안 <조선일보>는 이씨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최초 보도가 있었던 3월29일 이후 5월2일까지 <조선일보>가 이 사건과 관련해 쏟아낸 기사는 27건이다. 같은 기간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경향신문>이 4건을 보도하고 이외수씨가 사는 강원도 지역의 대표 언론인 <강원일보>가 3건을 보도한 것에 비해 현격히 많은 건수다. 연예 기사를 많이 싣는 계열사 매체인 <스포츠조선>은 2회 보도했다.
<조선일보> 계열사인 TV조선 취재팀은 한밤중까지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우다 경찰이 출동하자 중단하기도 했다. TV조선의 과잉 취재에 대해 이씨는 “이메일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찾아왔을 때는 아내가 나가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전달했다. 그런데도 한 시간 이상 문과 창문 등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나 때문에 아내와 아들들은 물론 며느리까지 피해를 보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씨 측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확인해보니 TV조선 기자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놀란 이씨의 둘째 며느리가 울먹이고 있었다.
5) 합의가 되어서 뒷맛이 씁쓸하다?
4월29일 우여곡절 끝에 이씨와 오씨가 합의에 이르자 <조선일보>는 ‘이외수씨 혼외 아들 양육비 소송 합의했지만…개운치 않은 뒷맛’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씨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양쪽 다 원만하게 합의를 봐서 조정이 되었는데 왜 <조선일보>가 뒷맛이 씁쓸한가? 이런 표현은 의도가 바로 보이는 것 아닌가? 누군가의 가정이 잘 안 되기를 바라는 것이 언론이 할 일인가? <조선일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왜 가족끼리 나쁜 감정을 부추기는가?”라고 비난했다.
정말 뒷맛이 씁쓸한 사람은 누구일까? 과잉 소송과 과잉 보도 속에 4월 한 달을 보낸 이씨는 “오씨와의 사이에 생긴 아들 문제와 관련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평생 응어리로 간직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맹세코 한 번도 내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아버지로서 부족했지만 아버지임을 부정한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아내 전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는 커다란 상처다. 어느 날 이 사건에서 ‘나’를 빼보았다. 그랬더니 범죄가 아니었다. ‘나’를 넣으면 죄가 되는데 빼면 아니었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정상적인 일 아닌가? 나는 솔직히 그 아이를 낳지 않기를 바랐지만 태어난 뒤로는 마음을 비웠다. 그래서 그 아이 병원비부터 생활비까지 꾸준히 보내왔다. 이제 더 이상 이 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혼외 아들을 출산한 오씨는 “여자로서 전씨를 이해한다.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나 같았으면 그냥 이혼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샘이 나서 소송을 벌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들의 당당한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나선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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