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5일은
<시사IN> 창간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부터 10일 동안은
<시사IN> 창간 관련 '묵은 글'들을
집중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좀 지난 글이지만,
<시사IN>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글이니
꼭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포스팅하는 글은 <시사IN> 첫 수습기자 모집 때
언론고시 카페에서 '<시사IN>에 갈 것인가, <시사저널>에 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져서
답답한 마음에 써 올렸던 글입니다.
<시사IN>에 지원해야 할 사람, <시사저널>에 지원해도 될 사람
“기자 아닌 기자의 길을 가는 기자답지 못한 기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론고시 준비생들의 카페에서 진행된 ‘<시사저널>에 지원할지 말지에 대한 논쟁’을 지켜보았습니다. <시사IN> 기자로서 제가 가타부타 말하는 것이 옳은 줄은 모르겠지만, 잠자코 있다가 혹여 ‘기자 아닌 기자의 길을 가는 기자답지 못한 기자’가 생길까봐 조심스럽게 개입해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기자가 되려고 한다면 지금의 <시사저널>에서 기자 일을 시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시사저널>은 경영진에 의한 무도한 기사 삭제와 이에 항의하고 편집권 독립을 주장한 기자들을 내쳤다는 이유로 한국기자협회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신생 언론사라 아직 한국기자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곳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포함되어 있다가 제명된 경우는 제가 알기로는 현재의 <시사저널>이 유일합니다.
여러분이 <시사저널>에 들어가는 것은 말 그대로 기자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기자 아닌 기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자 아닌 기자의 길’을 가면 ‘기자답지 못한 기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편집권이 편집국 기자들에게 있는 권한이 아닌 경영자들에게 있는 경영권이라고 우기는 언론사, 편집권 독립을 위한 파업이 불법 파업이라고 고소하는 언론사(이 소송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회사 직원들이 편집권 독립을 외치는 기자들의 멱살을 잡는 언론사(이와 관련된 소송도 진행 중입니다)가 ‘기자다운 기자’가 될 수 있는 언론사일까요?
현재의 <시사저널>은 ‘18년 전통의 정통 시사주간지’라고 광고합니다.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쓴웃음이 나옵니다. 간단한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18년 전통의 정통 한정식집’이 있다고 해봅시다. 화학조미료로만 대충 맛을 내라는 새로운 주인에게 항의해 주방장들이 모두 나갔다면 여전히 이 집이 ‘18년 전통의 정통 한정식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원재료의 맛을 살린다’는 원래의 정신을 잃어버린 이 집이 여전히 정통일까요?
논쟁을 지켜보니 ‘들어가서 바꾸면 된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더군요. 말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습니다. 23명의 기자들이 6개월 동안 파업을 하고도 하나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복지 수준을 높여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편집권 독립’을 외쳤을 뿐입니다.
물론 우리가 무능해서 바꾸지 못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습기자 한 명이 바꿀 수 있을 만큼 현재의 <시사저널>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어설픈 현실주의가 두려울 뿐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입니다. 청년실업은 백만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88만원 세대’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시사저널>에 가서 호구지책이나마 삼아야겠다, 하신다면 가십시오. 언가의 법도보다 당장 내 허기를 달래는 것이 급하다면 가십시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욕먹는 일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가십시오.
그러나 저를 감히 언론계 선배라고 부르지는 마십시오.
정도언론의 길을 걷겠다면 <시사IN>에 지망하시기 바랍니다.
6개월간의 파업과 2개월간의 고된 창간 과정을 거쳐 <시사IN>은 이제 제법 자리를 잡은 매체가 되었습니다. 한 호를 낼 때마다 1천여명의 신규 정기구독자가 등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안정적인 흑자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정기구독자의 절반에 육박해 있습니다. 새해부터는 광고도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할 예정입니다. 가판 판매율은 판매하는 매체 중 최고 수준입니다.
이런 결과는 사실 기적적인 것입니다. 한두 번 지면광고를 제외하고는 <시사IN>은 창간 이후 제대로 된 광고 한번 못냈습니다. 국민이 모아준 창간기금을 허투루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만큼 왔습니다.
앞으로도 치열하게 살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치열하게 살도록 떠밀고 있습니다. 때론 모질게 채찍질하면서, 때론 정답게 조언하면서 여러분이 참된 기자가 되도록 돕겠습니다. 힘겹도라도 제대로 된 기자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시사IN>에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언론계가 뻔한 바닥입니다. 언론계 첫발이 곧 여러분의 기자로서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삶의 길과 죽음의 길이 여러분 앞에 놓여있습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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