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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삼성을 쏜 난장이들

<시사IN> 세 여기자 이야기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9. 10.

김은남은 돌아왔고
노순동은 떠났고
안은주는 쉰다.

나는
이 세 여기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진으로 보는
'시사저널 사태'
그리고
<시사IN> 창간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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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남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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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동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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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주 누님


'시사저널 사태'를 겪기 전까지
김은남과 노순동과 안은주는 그냥 선배였다.
'시사저널 사태'를 겪고 그들은 '누님'이 되었다.

<시사IN> 창간 1주년을 되돌아보면서 사진을 정리하는데,
유독 이들 '세 누님'의 사진이 눈에 많이 띄였다.
(다른 누님들이 삐질라....흠...)

그래서 '시사저널 사태'와 '시사저널 파업'
그리고 '시사IN 창간'을 이들의 사진으로 재구성 해보았다.


- 김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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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남 선배는 노조 사무국장을 맡아 고생을 많이 했다.
빤한 노조 살림을 요모조모 요령 있게 잘 꾸렸다.

창간을 마치고 김은남 선배는 남편과 함께 미국 연수를 갔다가 최근 컴백했다.
이제 지면을 통해 그녀의 기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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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막바지에
노조 사무국장이었던 김은남 선배는
정희상 선배와 함께 심상기 집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나는 반대했다.
그런다고 말귀를 알아들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은 단식을 강행했다.
그들과 함께 북아현동 고개에서 여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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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두 아들이 왔다 갈 때마다 김은남은 약해졌다.
그리고 더 강해졌다.


- 노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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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사태' 초기에
윤무영 선배와 함께 노순동 선배는 '3개월 정직'의 징계를 받았다.
나중에 내가 '무기정직' 징계를 받았을 때 그 징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소녀가장' 노릇을 충실히 했던 노순동 선배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다.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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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기간 동안 노순동 선배는 성명서와 노보를 도맡았다.
파업 기간 중에도 그녀는 글에 찌들어 지냈다.

그녀의 능력이 진짜 빛을 발할 때는
용산에 노조 사무실을 만들 때다.
그녀는 정말 신나게 노조 사무실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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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파업 기간 동안
많은 독자분들이 도와주셨다.
그 와중에 그들은 시사저널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독자를 고소하는 언론사...기가 찼다.


- 안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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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을 받는 게 아니다.
지방노동청에 파업 쟁의 신고를 하는 것이다.
표정 참 밝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 줄도 모르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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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파업' 기간 동안 길거리집회를 많이 했다.
우리에게는 촛불이 무척 익숙했다.
촛불집회 때 <시사IN> 기자들이 거리편집국을 차린 것은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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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 하는 놈들은 꼭 '법과 원칙'을 내세운다.
'법과 원칙' 때문에 파업 전후로 갖은 소송에 시달렸다.
다행히 다 이겼다.

안은주 선배는 휴직 신청을 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그녀는 또 씩씩한 모습으로 독자 앞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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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사태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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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에 넘어간 기사를
사장이 편집국 몰래 빼면서 시작된 '시사저널 사태',
우리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처음엔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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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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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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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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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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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남들보다 1년 먼저 촛불집회도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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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도 많이 했지만....
(거리 편집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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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전후로 많은 상을 받았다.
안종필 자유언론상
한국기자상 공로상
민주언론상
하지만, 상이 우리의 허기까지 달래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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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완주했다.
그리고 <시사IN>을 창간했다.
그리고 1년을 버텼다.
앞으로 10년을
100년을
더 버텨야 한다.


그 여정에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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