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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키 작은 영화들

평론가들이 <명량>에 대해 악평할 수밖에 없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4. 8. 12.




평론가들이 <명량>에 대해 악평할 수밖에 없는 이유 



먼저 현대음악과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자. 

현대음악과 현대미술은 고전음악 고전미술 혹은 근대음악 근대미술에 대한 지겨움에서 출발한다. 

음악과 미술에 대한 고전적인 가치 혹은 근대적인 가치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현대음악과 현대미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적인 가치와 근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관객 혹은 관람객과 괴리가 생긴다. 

관객은 자신에게 익숙한 가치가 배제되어 있는 이런 음악과 미술에 대해 ‘어렵다’고 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경쟁이 발생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8할은 고전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2할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한다면 관객의 호응도 얻고 새로운 성취도 이룰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00%가 아니면 사이비 취급을 하기 때문에 절충형을 보기는 어렵다.  

대중성과의 괴리는 숙명이다. 소수의 감상자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쇤베르크나 앤디워홀처럼 천재가 아닌 이상 일반 코드가 되기는 어렵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평론도 비슷한 것 같다. 

대중이 생각하는 영화의 고전적인 가치는 영화평론가들에게는 지겨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가치에 충실한 무난한 영화는 영화평론가들에게 좋은 평을 듣기 힘들다. 

고전적인 가치에 무심하더라도 영화적 실험을 하는 영화들이 좋은 평을 받곤 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내가 보기에는 재미가 없는데 왜 이런 영화를 좋다고 하는거지?’하고 생각할 수 있다. 

영화를 오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관객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만듦새를 보는 평론가 사이에 관점의 차이는 필연이다. 


이런 까닭에 기본적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는 영화평론가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수밖에 없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지상 가치는 흥행이고, 흥행을 위해서는 고전적인 패턴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적 답습에 영화평론가들은 냉정하다. 

<명량>역시 마찬가지다. 

고전적인 패턴을 많이 답습하고 있고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적다. 

결정적으로 <명량>은 애국신파 영화다. 

이런 영화에 대해 영화평론가들의 점수는 매우 짜다. 


하지만 <명량>에 대해 영화평론가들이 언급해 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바로 그런 고전적인 패턴을 따르면서도 영화적으로 새롭게 활용하는 부분이다. 

<명량>이 이뤄낸 흡입력과 몰입감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언어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숱한 실패에서 우리는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해서 쏟아 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아주 단선적인 이야기고, 단 1회의 전투씬만을 그리고 있고, 캐릭터도 평면적이고, 기타 등등... 

여러 영화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를 훌륭히 완수한 <명량>의 성취에 대해 일반 관객들이 와닿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나는 좋은 평론가와 나쁜 평론가의 기준으로 ‘주관의 객관화냐’ vs ‘객관의 주관화냐’, 둘 중 어떤 방식을 취하는 평론가냐 하는 기준으로 나눈다. 

나쁜 평론가들은 자신의 주관을 객관인 것처럼 위장한다. 

반면 좋은 평론가들은 객관을 자신의 주관적 관점으로 표현한다. 

간단한 차이지만 큰 차이다. 

평론은 자신의 평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어서만은 안 된다. 

영화에 대한 그림을 그려줄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기준은 자신의 기준으로 함부로 영화를 재단하지 않고, 

영화에 따라서 유연하게 기준을 적용하느냐 여부다. 

영화 평론을 정태적으로 혹은 고답적으로 하는 평론가들이 많다. 

이들은 자신의 기준을 절대적 잣대라고 착각한다. 

영화의 진화보다 평론의 진화가 더딘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평론가들은 대중의 취향을 휘어잡은 흥행작에 대해 이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평론의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는 능숙한데, 왜 되는지에 대해서는 젬병이다. 


<명량>에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비결’일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이것을 어떻게 구현하고, 그것에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평론가도 주목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