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시사IN 창간 1주년 기념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이날 조합원 비상총회를 했던 YTN 노조는
뒤풀이에 합류했습니다.
묘한 만남이었습니다.
기나긴 어둠의 파업의 터널을 지나온 기자들과
파업의 입구에 서 있는 기자들의 만남...
'시사저널 파업'과 '시사IN 창간'으로 이어진
'시사저널 사태'를 사진으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아마 YTN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 같습니다.
편집이 모두 끝난 기사를
기자들 모르게 사장이 인쇄소에서 빼낸
'시사저널 사태'는 2006년 6월 15일 발생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정면대응하기 위해 시사저널 기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노동조합을 처음으로 설립한 기자들은
먼저 노동조합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부터 했어야 했습니다.
강사는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입니다.
그는 참 열심히 우리를 도왔습니다.
'시사저널 파업'의 배후조종자 정도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붉은 머리띠가 곧 익숙해 졌습니다.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요를 부르고...
거리 집회에 나가고...
일단 '투쟁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일일호프를 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습니다.
손석희 교수에게도 참 여러 번 손을 벌였지요.
고진화 전 의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투쟁 과정에 기자들은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동아투위' 선배님들을 끝까지 우리를 성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회사는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라며
금창태 사장의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회사와 단체협상 모습)
그러면서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을 징계했습니다.
백승기 장영희 선배가 '무기정직' 징계를 받았고
윤무영 노순동 선배가 '3개월 정직' 징계를 받았습니다.
(저는 나중에 '무기 정직'을 받고 징계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징계 기간 동안
백승기 선배는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며
'시사저널 사태'를 알렸습니다.
회사의 변함 없는 태도에
기자들은 결국 지방노동청에 쟁의신청을 하고 파업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6개월 간의 '시사저널 파업'이 시작됩니다.
회사는 곧 '직장폐쇄'로 응수했습니다.
갈 곳을 잃은 기자들은 '거리편집국'을 세우고 거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미리 선임한 편집위원들과 함께
기자들이 배제된 시사저널을 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사저널을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독자들도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패러디하기도 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분들은
'짝퉁 시사저널'의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동참해 의원실 앞에
'짝퉁 시사저널 취재거부' 로고를 붙여 놓는 의원도 많았습니다.
파업을 위해 또 돈을 모아야 했습니다.
급히 책을 쓰고, '후원의 밤'을 열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우리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태권도장을 하는 한 독자분은
제자들을 데리고 이런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하셨습니다.
사장이 뺀 기사는 '삼성 기사'였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삼성에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삼성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심상기씨 집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투쟁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시사저널과 결별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든 시사저널을 떠나 새로운 희망을 찾기로 했습니다.
목이 메었습니다.
청춘을 바쳤던 시사저널에
기자들은 꽃 한 송이씩을 바쳤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웃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매체를 창간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OBS '희망노조'가 이용했던 방송노조 사무실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희망을 찾아 나섰습니다.
잘 되라고 고사를 지냈습니다.
절실했습니다.
(고사상에 오른 '돈순이'는
이후 모금 활동에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미술부 양한모 선배가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새 이름은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었습니다.
파업기간 동안 정말 많은 곳에 손을 벌였는데,
다시 손을 벌여야 했습니다.
심지어 그림까지 팔았습니다.
유명인들도 창간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권해효 서유석 김유석 황현희 최광기님이 홍보대사를 맡아주셨습니다.
드디어 제호를 완성했습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주간지'
시사IN이 탄생한 것입니다.
준비가 부족했던 창간호,
하지만 신정아씨 인터뷰가 성공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문정우 선배가 초대 편집국장을 맡아
지난 1년 동안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대표이사를 맡은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도
고집불통 기자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남문희 선배(왼쪽)가 2대 편집국장을 맡았습니다.
이제 <시사IN>은 재도약을 하려고 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위기의 기자들, PD들 > 삼성을 쏜 난장이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사IN은 합격하고 시사저널은 불합격했습니다 (31) | 2008.11.21 |
---|---|
인문학에 빠진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9) | 2008.10.27 |
소설가 김훈의 <시사IN>에 대한 고언 (18) | 2008.09.11 |
<시사IN> 세 여기자 이야기 (26) | 2008.09.10 |
(창간 1주년) <시사IN> vs <시사저널> (10) | 2008.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