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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삼성을 쏜 난장이들

인문학에 빠진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0. 27.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장)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선정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이자
대표적인 좌파학자인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로부터
인문학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둘의 만남이 갖는 '부조화'가 흥미롭다.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왼쪽)과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오른쪽)


<시사IN>과 이학수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은 ‘악연 중의 악연’으로 얽혀 있다.
<시사IN> 기자들은 <시사저널>에 있을 당시,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라는 3쪽 자리 기사를 금창태 사장이 기자들 몰래 인쇄소에서 빼낸 것에 항의하다, 6개월 동안 파업하고 끝내 결별선언을 하고 나와 <시사IN>을 창간했다.
이후 <시사IN>은 전 삼성 법무실장,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양심선언' 특종을 터뜨려, 삼성특검이 만들어지게 했고 끝내, 이 전 부회장도 이건희 회장과 함께 물러나게 되었다.
그에 대한 답례로 삼성은 창간 1년이 넘도록 <시사IN>에 광고를 주지 않고 있다.



나는 <시사IN>과 이학수 전 부회장의 ‘악연’이 ‘인연’이 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시사IN>에서 이 전 부회장을 인터뷰할 수도 있고,
김용철 변호사와 대담을 시킬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이때를 위해 그때 삭제된 기사를 아직도 지니고 다닌다.
그 기사를 보여준다면 아마 이 전 부회장도 ‘허허’ 웃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절이 있었죠’하고 말 것이다.
이생의 악연은 이생에서 푸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을 것이다.



시사저널 당시, 우리는 삼성기사 삭제 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했다.



꾸준히 이 전 부회장의 동향을 살피고 있던 나의 레이더망에 이 전 부회장의 근황이 포착되었다.
그런데 그의 근황이 놀라웠다.



최근 그는 부부 동반으로 한 인문학자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토론식 수업이라 ‘수강한다’는 표현보다는 ‘참여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인문학자가 바로 대표적인 좌파 학자로 꼽히는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다.
신영복 전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얼마 전 국방부가 선정한 23권의 ‘불온서적’ 리스트에 오르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삼성 이학수 전 부회장이, 좌파 학자 신영복 전 교수에게 인문학 강의를 듣는다?
놀라웠다.
‘이학수라는 사람이 역시 간단하지 않은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의 첨병, 삼성 구조조정본부 책임자였던 이 전 부회장이 좌파교수로부터 인문학 강의를 듣는다는 그 부조화를 보면서,
나는 나의 꿈도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도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새겨 보고 싶을 것이다.
그때 <시사IN>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면 진정한 회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 부회장이 신 전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된 데에는 둘의 남다른 인연도 작용했다.
이 전 부회장은 신 전 교수와 같은 경남 밀양 출신이다.
부산상고 후배이기도 하다.
이 전 부회장은 지난 2006년 여름 신 전 교수의 정년 퇴임식에도 참여했었다.



퇴임식장에서 이 전 부회장은 “신 선배는 고향(경남 밀양) 선배이자 고등학교(부산상고) 선배시다. 대학 1학년 때 신 선배가 하 숙집에 자주 찾아와 둘이서 좋은 얘기를 나눴다. 당시 마음속으로 참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삼성에 입사한 이후 지방에 근무할 때 신 선배가 불행한 일(통혁당 사건으로 구속수감)을 당한 사실을 알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20년 넘게 수감생활을 한 신 선배가 이후 훌륭한 사회지도자로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을 보면서 '역시 선배'라고 생각했다. 신 선배가 앞으로 20년,30년 넘게 우리 사회에 좋은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었다.



이학수 전 부회장이 신영복 전 교수의 인문학 강의를 끝까지 수강하기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사IN>에 풀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