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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저리뉴스

한나라당 3대 파벌간 싸움 감상법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9. 22.



 ‘파벌(派閥)’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목표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부조리한 배척활동을 하는
집합체’라는 것이다.


이런 파벌의 의미에 비추어 볼 때,
계파 이익을 위해 당에 손실을 끼칠 정도로
배타적 정치행위를 하는
한나라당 내 친이 혹은 친박 정치인은
파벌로 부르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에 3개의 파벌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박근혜 파벌과 이상득 파벌, 그리고 이재오 파벌이다. 친이와 친박으로 나누는 2분법은 총선 이전의 분류법이고 총선 이후로는 ‘이상득 용퇴론’을 주장했던 이재오 파벌과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이상득 파벌’, 그리고 ‘박근혜 파벌’의 3분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파벌의 원심력과 구심력을 살펴야 한나라당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준표 원내대표 퇴진 논쟁’은 한나라당 내 파벌의 존재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홍 원내대표는 ‘추석 전 추가경정안 처리 무산’에 대한 책임론이 일자 의원총회의 집합적 판단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의원 총회에서는 홍 원내대표의 진퇴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격론은 친이 성향 의원끼리 벌어졌다. 청와대가 ‘전투 중에 장수를 바꿀 수 없다’며 유임에 무게를 두었지만 쉽게 교통정리가 되지 않았다.


싸움은 적과 아군의 구별을 명확히 해주는 장점이 있다. 퇴진 논쟁이 본격화되면서 친이 계열 안의 세력 분화가 선명해졌다. 퇴진론을 주창한 진수희 정태근 권택기 김용태 의원 등은 이재오 전 의원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의원들이다. 이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면서 연말로 예정된 이 전 의원의 복귀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위해 ‘이재오 파벌’이 지도부 힘빼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홍준표 퇴진론 놓고 이재오 파벌과 이상득 파벌 분화


진수희 의원은 안경률 사무총장 공성진 최고위원 이군현 의원과 함께 대표적인 이 전 의원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진 의원은 총선 직전 김용태 의원과 함께 ‘이상득 용퇴’를 주장하는 55인 성명을 주도했다. 김 의원은 이 전 의원이 사용하던 의원회관 338호실을 물려받았을 만큼 측근이다. 김 의원은 이번 정국에서 홍 원내대표를 누구보다도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정태근 의원은 이 전 의원이 4강 외교를 위해 러시아 특사로 파견되었을 때 안경률 의원과 함께 수행을 했던 대표적인 이 전 의원의 측근 의원이다. 권택기 의원은 이 전 의원이 존스홉킨스대학 국제정치대학원(SAIS)에 초빙교수 자격으로 가서 강의를 맡기 위한 실무를 도맡아 처리했다. 권 의원은 9월 초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장에 공성진 최고위원 진수희 의원과 함께 가서 이 전 의원을 만나고 오기도 했다.


이 전 의원 측근들이 ‘홍준표 퇴진론’을 들고 나오면서 세를 과시하자, 퇴진 논란 전에는 홍 원내대표와 견제 관계에 있던 박희태 대표도 홍 원내대표를 두둔하고 나섰다. “당헌·당규 상 국회 운영은 원내대표가 책임진다”라며 은근히 자신을 따돌렸던 홍 원내대표를 박 대표는 적극 옹호했다. ‘이재오 파벌’의 지도부 흔들기가 자신을 겨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표보다 ‘이재오 파벌’의 준동에 민감했던 곳은 ‘박근혜 파벌’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 측근들이 나서서 홍 원내대표를 두둔하며 이들을 견제했다. 이정현 의원은 홈페이지에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자중지란을 자제하자”라고 글을 올리며 홍 원내대표를 지지했다. 김무성 의원과 함께 ‘박근혜 파벌’의 좌장으로 꼽히는 허태열 최고위원은 9월17일 추경안이 통과된 후 “추경안도 합의된 만큼 홍 원내대표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시점에서 타당하다고 본다”라며 홍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박근혜 파벌’에 속하는 의원들이 홍 원내대표를 두둔한 데는 예결특위에 참석하지 않은 7명의 위원 중 5명이 친박계였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해석도 제기되었다. 홍 원내대표의 책임을 물을 경우 그 불똥이 불참한 파벌 의원들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승민 의원이 “추경안에 찬성하지 않아서 불참했다”라고 밝히는 등 소신행보를 했다는 것으로 보았을 때 이는 단순한 ‘보이코트’가 아닌 ‘MB노믹스’와 차별화되는 박근혜식 시장경제관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행위로 해석할 수도 있다.


‘홍준표 퇴진론’을 둘러싸고 각 파벌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후임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였다. 본인들은 고사 입장을 밝혔지만 정의화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거론되었다. 정 의원은 이 전 의원이 전당대회 전 박희태 대표-홍준표 원내대표 체제의 대항마로 안상수 대표-정의화 원내대표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이 전 의원 쪽으로 분류되었다. 김무성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로 거론된 것은 여전히 건재한 박근혜 전 대표의 위상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상득 파벌'의 한계 명확해져


이번 퇴진 논란 와중에 가장 상처를 많이 입은 곳은 ‘이상득 파벌’이다. 현재 당 주류 세력이지만 충성도가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다수파지만 ‘이재오 파벌’ 의원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홍 원내대표의 진퇴를 논의하는 의원 총회 장에서도 ‘이재오 파벌’에 속하는 의원들의 공세를 이정현 이인기 의원 등 ‘박근혜 파벌’에 속하는 의원들이 막아내면서 겨우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이번 파동으로 ‘이상득 파벌’은 ‘막후 실력자’는 있지만 ‘정치적 구심점’이라 할 만한 대표주자가 없다는 것, 현재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단점이 적나라하게 증명되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이번처럼 ‘이재오 파벌’의 공세를 ‘이상득 파벌’과 ‘박근혜 파벌’이 연합해서 막아내는 모양새가 앞으로도 자주 연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징후는 영남 지역 친이 의원들이 친박근혜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친박 성향이 아닌 영남 친이 의원은 대부분 지금까지 ‘이상득 파벌’로 분류됐었다. 이들이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득 의원 사이에서 ‘분산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이 의원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이 박 전 대표로 무게 중심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정몽준 최고위원 등 다른 차기 주자에게도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 내 세력이 ‘이상득 파벌’ ‘이재오 파벌’ ‘박근혜 파벌’로 선명하게 구분되는 양상은 민주당이 열린우리당 시절 친노 직계와 정동영계와 김근태계로 구분되었던 것과 비슷하다. 당시 친노 세력이 유시민 전 장관을 중심으로 한 친노 직계와 정동영 전 장관을 중심으로 한 친노 방계로 분화되면서 김근태계와 함께 3대 세력을 구축했다. 


정동영계는 ‘노사모’ 회원 중 정치 참여적인 회원 모임인 ‘국민의 힘(이후 국민참여 1219로 계승)’을 끌어들여 당 주류로 부상했다. 이후 이들을 모태로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을 조직해 대선 경선에서도 승리했다. ‘친이 방계’를 규합해 세력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이재오 파벌’이 이와 비슷한 성장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3개의 세력이 상호 견제했던 열린우리당은 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였다. 이는 당 의장이 9번이나 바뀌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관건은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똑같이 밟느냐 하는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는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