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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리즘'을 옹호하며

'연대 천국, 분열 지옥' KBS 기자 PD들에게 바란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1. 13.



기자들이 <시사 투나잇>을 지켜주고

PD들이<미디어 포커스>를 지켜줘야


정부의 KBS 장악을 막을 수 있다.




'연대 천국, 분열 지옥!!!'




가을 개편 내용에 항의해 농성중인 KBS PD협회 소속 PD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 그 순간에 이르자, /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로의 <다음은 우리다>라는 시다. 정부의 방송장악이 본격화 되었을 때 KBS 라디오 PD로 일하는 친구가 KBS의 현실을 개탄하며 이 시를 들려주었다. 정부가 방송장악의 고삐를 당겨올 때, ‘나는 정빠(정연주 추종세력)가 아니니까 나설 필요가 없어’라며 편리하게 생각하는 KBS 내부 구성원들에게 이 시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KBS 구성원들의 방관은 계속되었다. 노조는 낙하산 사장을 방관했고, 사원들은 동료들의 불행을 방관했다. 정연주 사장 퇴진과 낙하산 사장 임명 과정에서‘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에 속해 항의했던 사원들이 대거 징계성 인사를 당해‘인사 숙청’이라는 말이 나왔지만‘나는 사원행동이 아니니까 나설 필요가 없어’라며 방관했다.



가을 개편을 통해‘인사 숙청’에 이은‘프로그램 숙청’과‘출연진 숙청’이 벌어지면서 서서히‘침묵의 카르텔’이 깨질 조짐이 보인다. 프로그램 명칭 변경을 통한‘사실상의 폐지’조치에 항의해 <시사 투나잇> PD들이 처음 피켓을 들었을 때, 그들만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 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동병상련’을 느끼던 <미디어 포커스> 기자들이 피켓을 들고 옆에 섰고, 예능PD, 드라마PD, 라디오PD들도 함께 천막농성장을 지켰다.



1인 시위 중인 동아투위 선배들.




저항자의 최대 무기는‘연대’다. 언론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로‘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34주년을 맞은‘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선배들의 무기도 바로 연대였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들의 해직 과정에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정황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자 이들은 동아일보 앞에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주장하며 34년 동안 함께 해온 해직자들이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4인 1조였다. 한 사람이 한 시간 씩 하루에 네 시간 동안 1인 시위를 벌였다. 정동익 동아투위위원장의 수첩에는 한 달여간의 1인 시위 일정이 빽빽이 메모되어 있었다. 당번인 사람도 1시간만 시위를 하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동료가 1인 시위를 할 때 옆에서 지켜주었다. 대부분 60대가 넘은 노인인 그들이 보여준 조직력이 놀라웠다.



후배들은 평소에 그들을 찾지 않는다. 사단이 났을 때 그들로부터 정통성을 이어받고자 손을 내밀 뿐이다. 우리도 그랬다.‘ 시사저널 파업’을 시작하고서야 오직 전설로만 전해지던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기꺼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 그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았다. 감동이었다.
‘누구누구의 딸이 결혼을 한다’‘누가 이사를 간다’‘누구의 핸드폰 번호가 바뀌었다’... 사소한 글이었지만 그들이 34년 동안 연대의 끈을 유지하는 것이 놀랍고 부러웠다. 그들은 직장을 잃었다. 대신 평생을 함께 할 형제를 얻었다.



함께 피켓팅을 하고 있는 시사투나잇 PD들(왼쪽)과 미디어포커스 기자들(오른쪽).




지난 10월10일 <시사투나잇> 5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기쁜 마음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연락을 받고 일부러 일정을 앞당겨 올라와 참석했다. 아쉬운 점은 회사의 지원이 없어 PD들이 십시일반으로 어렵게 만든 그 기념식자리에 KBS 보도국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낙하산 사장을 막기 위해 어깨에 어깨를 걸고 싸웠으면서도 미처 연대의 틀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옆에서 보기에 서글펐다.



<시사투나잇>은 타 직종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 성과를 기자들이 지켜주었으면 한다. MBC 경영진이 <PD수첩> ‘광우병편’에 대한 굴욕적인 사과방송 결정을 내렸을 때 MBC 기자들은 수십 명이 나서서 사과방송 테이프가 반입되지 못하도록 뉴스 주조종실을 지켜주었다. MBC 기자들 역시 <PD수첩>의 ‘PD저널리즘’방식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고, 그 존재 의의를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불편을 감내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부터 KBS 기자들이 이런‘연대’ 의 첫 발자국을 내 디딘데 대해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제 PD들도 <미디어 포커스>를 지켜주는 것으로 화답할 차례이다.


잊지 말자.‘ 연대 천국, 분열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