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였다. ‘빨래하는 남자’라는 블로거분이 ‘기자블로거를 위한 블로거뉴스 기자상 투표’라는 글을 포스팅하고 <독설닷컴>에 트랙백을 걸어두었다. 블로거뉴스 기자상 후보(시사분야)에 현직 기자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는 글이었다. ‘현직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는 기자와 일반 블로거의 경쟁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살펴보자. 시사분야 기자상 후보는 아홉 명이다. 이중 ‘박정호 기자의 양을 쫓는 모험’ ‘고재열의 독설닷컴’ ‘노태운기자의 발가는대로’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정진탄기자, WELCOME! The Open Blog and it’ 다섯 곳이 기자블로그다. 나머지 4곳도 2곳은 연관이 있다. ‘미디어토씨’는 기자 출신인 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운영하는 블로그고 ‘박형준의 창천항로’의 운영자 박형준씨는 최근 <말>지 기자가 되었다. 순수한 블로그는 ‘Boramirang, 내가 꿈꾸는 그곳’과 ‘미디어몽구’ 두 곳 뿐이다. 확실히 기자 편중이 심하긴 심하다.
생각해 보았다. ‘빨래하는 남자’가 다른 후보분들의 블로그에도 트랙백을 걸어두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독설닷컴>에 트랙백을 걸어두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짧게나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지난 6개월 동안 ‘블로고스피어’라는 원형경기장에서 블로거들과 계급장 떼고 붙었다라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기자가 아닌 블로거들은 나를 포함한 기자들이 더 큰 방패를 들고, 더 긴 창을 들고 싸우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보도자료를 받아볼 수 있어서 유리하다. 기자 신분이라 취재하기가 용이하다. 여러 가지 지적이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 ‘뉴스를 찾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업이 따로 있는 블로거들의 경우 일과 블로깅이 분리되지만 기자 블로거는 일과 블로깅이 일치될 수 있다. 이것이 아마 가장 결정적인 유리한 점일 것이다.
불필요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보도자료에서는 절대 특종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출입기자의 보험일 뿐이다. 기자 신분으로 취재하는 것에 대해 촛불집회의 예를 들었는데, 이때 얻어맞은 기자가 열 명이 넘는다. 시사IN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MBC KBS YTN... 이명박 시대에는 현직기자도 시민기자와 똑같이 얻어맞으니, 그리 억울해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
블로거뉴스 기자상 상금이 욕심나기는 하지만(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블로거들이 기자블로거가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자블로거가 수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용퇴하겠다. 블로거뉴스 기자상은 숨은 진주를 발굴하는 것이 더 취지에 맞을 것이다. 상의 의미를 살리기위해서라면 동의한다. 하지만 ‘프로리그’에 속한 사람이 ‘아마추어 리그’에 와서 상을 타가려고 한다고 이분법적으로 바라본다면, 스스로 ‘블로고스피어’를 평가절하한다면 이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자신이 이룬 성취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2류로 규정하는 어리석은 짓이다(조건없이 바로 용퇴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다른 기자블로거분들의 입장도 있으니 좀더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하겠다).
블로거들에게 기자블로거는 작은 적이다. 진짜 큰 적은 따로 있다. 기자의 전문성은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달자로서 전문성을 갖는다. 이를테면 ‘스페셜한 제너럴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기자는 ‘제너럴한 스페셜리스트’를 취재해 특정 사안에 대해 알기 쉽게 핵심을 전달하는 '전달전문가'들이다. 자신이 속한 미디어를 통해 이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블로고스피어’는 누구든 능력만 있으면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문제는 제너럴하게 존재하는 스페셜리스트들이 스스로 미디어화 한다는 것이다.
블로거들의 진짜 큰 적은 바로 이 스페셜리스트들이다. ‘미네르바’와 같은 스페셜리스트들이 스스로 미디어화 한다면(미네르바와 같은 블로거가 곧 즐비해질 것이다), 전달자들의 역할은 사라진다. ‘블로고스피어’의 2차 폭발은 전문가들이 블로거로 나설 때 발생할 것이다. 이때가 되면 어설픈 전달자들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기자든, 기자가 아닌 블로그든. '미네르바 신드롬'은 이미 불이 붙었다. 전문가 중에서 미네르바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블로거들은 스스로 진화해서 그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좀 더 논의를 확장해서, 블로거뉴스의 비전과 관련해서 이야기 해보자. '미네르바'와 같은 스페셜리스트들이 블로거가 되는 상황이 오면, 나는 블로거뉴스가 미디어다음과 네이버뉴스를 제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를 직접 만나게 되면 '전달 전문가'는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청와대 블로그가 비판 블로그와 직접 대작하는데, 그 중계방송 뉴스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블로거들이 그런 비전을 염두해두고 자신의 전문분야를 특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룰'에 대해 좀더 관용도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기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파워블로거가 되면 자신이 속한 미디어가 굴레가 된다. 회사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지면에 쓸 수 없는 글은 블로그에도 쓸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기자출신 파워블로거들이 블로그에 쓴 글 때문에 회사와 마찰을 겪는다. 조선일보 서명덕 기자나 중앙일보 이여영 기자처럼 자의 혹은 타의로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큰 마찰이 생긴다. <독설닷컴> 또한 크고 작은 견제를 받고 있어서 상생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다.
기자가 블로거로 성장하면 기자도 좋고 회사도 좋은 것 아니냐, 라고 처음에는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기자가 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파워블로거가 되면 시선이 바뀐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기자에게 회사는 협동농장이다. 블로그는 텃밭이다. 텃밭을 잘 가꿔 놓으면 어느날 농장주가 와서 말한다. "너는 협동농장 노동은 대충하고 네 텃밭만 가꾸는구나." 그러다가 조그만 문제라도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질책한다. 기자 파워블로거는 누구든 이런 성장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기자 블로그는 낙오율이 높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블로그를 시작하지만 대부분 흉가가 된다. 불과 몇 명 살아남는다.
최진순 기자나 유용원 기자처럼 자기 전문분야가 명확한 기자들은 예외다. 그러나 나 같은 '전업관심가'는 피곤해진다. "왜 시사IN 지면에 안 쓰고 블로그에 먼저 썼나?" "지금 취재하고 있는 내용인데 블로그에 먼저 쓰면 반칙 아니냐?(예고편을 올릴 경우)" "왜 시사IN 홈페이지에 올리기 전에 블로그에 먼저 올렸나?" 한 주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시사IN이 이 정도면 다른 언론사는 안 봐도 DVD다. 최근에 '노태운 기자의 발가는대로' 블로그에 보니까 글 밑에 '블로그는 1인 미디어이므로 기자 블로그의 내용은 회사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라고 쓰여 있던데, 그 뒤에 얼마나 복잡한 일들이 있었을 지 상상이 간다. 이여영 기자 사건 이후 중앙일보는 편집국장이 블로그 운영 원칙과 관련해 단체 메일을 보낼 정도로 민감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들었다. 기자 블로그의 고충도 많다.
내부의 몰이해에 대응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예 주도적으로 블로그 정책을 펴는 것이다.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이 대표적인 경우다. 두 선배는 경남도민일보에 메타블로그를 만들고 아예 블로그 담론을 주도한다. 다른 하나는 조용히 숨죽여 지내는 것이다. 한 기자블로거 선배는 자신의 불문율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절대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조직인이다. 이런 피곤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나는 현재 이 두 방법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첫번 째 방법을 선택하고 싶지만 내부의 몰이해와 무신경을 감당할 자신이 도저히 없다.
기자 블로그는 기자가 매체의 한계 혹은 조직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 준다. 2편에서는 그에 대한 얘기를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노태운 기자의 발가는대로’ ‘고재열의 독설닷컴’의 사례를 통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블로그를 통해 김주완 김훤주 기자는 ‘전국에서 통하는’ 전국구 기자로 거듭났고, 노태운 기자는 ‘취재본능’을 일깨웠고 고재열 기자는 주간지라는 매체의 한계를 극복했다. 기자블로거를 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기자블로거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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