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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언론노조 1차 파업 관련 포스팅

SBS 노조가 언론파업에 동참한 이유를 묻는 분들께 (SBS 윤창현 기자)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 6.


'언론장악 7대 악법' 개정에 반대하는
'언론노조 총파업'이 12월26일 시작되었습니다.

<시사IN> 69호에서는
'파업 동참 방송인 6명의 편지' 기사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그 중 SBS 윤창현 기자의 글을
본인 허락을 얻어 '독설닷컴'에 게재합니다.
(KBS 노조는 파업 참여가 아닌 파업 지지 중)

이번 언론총파업은 MBC 싸움인데,
왜 SBS도 함께하느냐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인 것 같습니다.






시사 IN 독자 여러분 그리고 SBS 시청자 여러분!!
우선 새해 인사부터 드립니다.
기축년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벌써 12년이 넘게 기자생활을 해 오고 있지만 대학시절 흥얼거리던 투쟁가를 다시 부르며 거리에 나서야 하는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역사의 시계바늘이 20년쯤 거꾸로 돌아갔음을 절절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제겐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수습기자 시절이던 1997년 1월, 이제 갓 입사한 신참내기였던 저는 당시 한국사회를 뒤흔들던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 현장을 명동 한복판에서 마주했습니다. 당시 SBS 취재 카메라를 향해 날아들던 돌팔매 세례와 단호한 인터뷰 거부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찾아보니 당시 SBS 기자협회에서는 이런 성명을 냈더군요.



 "SBS 뉴스가 권력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전국적인 파업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사실 보도조차 못하고 있다............(중략).............일반 시청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취재 현장에 나가있는 기자들이 취재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취재를 거부당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는 현실에 자괴감과 참담한 심정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당시 ‘자괴감’을 느꼈던 많은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라며 쓴 소주로 쓰린 가슴을 달래며 미래를 기약했고 시간이 흘러 그 선배들은 간부가 되고 그 후배들은 이제 그 때 그 자리의 선배의 위치가 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해 여름 거대한 촛불민심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현장에서는 1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SBS를 향한 발길질과 조롱이 쏟아지고 있었고, 현장의 후배들은 97년의 저처럼 ‘자괴감’과 ‘참담함’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과거 같은 노골적 불균형은 줄어들었지만 기계적 중립의 틀에 갇힌 손쉬운 ‘양비론’이 날카로운 비판을 대체했고, ‘사실’에 대한 ‘왜곡’이 아니더라도 ‘사실’의 ‘취사선택’에는 과거와 별다르지 않은 편향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내부 비판이 들끓었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고개를 숙이고 외면해 온 과거의 악습들이 보다 세련되고 치밀한 모습으로 시나브로 우리의 DNA에 깊숙이 침투해 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 지 구성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2월 26일 언론노조의 총파업이 시작되자마자 SBS 8 뉴스를 통해 ‘이번 파업이 불법이며 가담자를 사규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두 문장짜리 기사가 전파를 탔습니다. 많은 SBS의 구성원들은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과 허탈, 분노를 느꼈습니다. 시민사회와 언론학자들은 한나라당이 내세운 방송법 통과 이후의 참담한 미래를 SBS가 몸소 보여줬다며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일선의 SBS 기자들은 다시 성명을 내고 저항의 몸부림을 시작했습니다.



“기자협회 구성원들은 사태의 심각성과 엄중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SBS 기자협회는 이번 사태를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SBS 보도국의 숙명적 과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폭거로 규정한다.“



사실 SBS의 방송노동자들에게 ‘파업’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입니다. 그만큼 절박합니다. 구호 한 번 따라 외치는 것, 힘차게 팔뚝질 한 번 하는 것도 어색하고 서투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당하지만 계속하면 나중에는 믿게 된다”는 나치 앞잡이 괴벨스의 말처럼, 이제라도 행동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방송악법 통과를 방관만 하다가는 외눈박이 물고기 같은 권력과 자본의 논리가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DNA를 완전히 바꿔 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이번 ‘파업’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려는 SBS 구성원들의 가슴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은 영원한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잠시 전파를 잠시 빌린 ‘임차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본질은 방송의 소유형태가 공영이든, 민영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SBS 방송인들의 첫 파업은 ‘권력과 자본’이라는 척박하고 얕은 땅에서 위태롭게 자라 온 뿌리를 이제 ‘건강한 시민’이라는 비옥하고 깊은 땅으로 옮겨심기 위한 첫 발걸음입니다. 그래서 너무도 정당한 싸움입니다.


건강한 나무도 옮겨 심으면 몸살을 앓는 것 처럼, 더 이상  ‘권력과 자본’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SBS 노조의 언론 총파업 동참은 건강한 시민들에게 크고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줄 뿌리깊은 나무로 크기 위한 성장통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독자여러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 한 발 한 발 내딛는 SBS의 젊은 양심들을 애정과 격려로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든든한 배경이 돼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