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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저리뉴스

한상률이 죽으면 정두언이 사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1. 22.


한상률 국세청장 사퇴는
권력 개편의 신호탄이다. 
 
‘그림 로비’ ‘골프 로비’ 의혹을 받은 한 청장은
사실관계가 규명되기도 전에 사퇴했다. 
그리고 곧 국정원장 경찰청장도 교체되었다.  

한상률 청장 사퇴와 관련한 
국세청 내부 갈등 
4대 사정기관장 사이의 암투,
그리고 여권 권력개편의 징후를 살펴보았다.






‘그림 로비’ 의혹과 ‘골프 로비’ 의혹을 받던 한상률 국세청장이 전격 사퇴했다. 로비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규명되기도 전에 한 청장이 사퇴를 발표하는 등 상황이 숨 가쁘게 진행되면서 이 사건은 새로운 해석을 낳고 있다. 국세청장을 ‘꼬리자르기’식으로 쳐낼 정도로 다급한 사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단 이번 ‘그림 로비’ 의혹의 개요는 이렇다. 한 청장이 국세청 차장 시절 인사 청탁을 위해 부부 동반 모임에서 당시 청장인 전군표 전 청장에게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내용은 전 전 청장의 부인 이 아무개씨의 고백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대해 전 전 청장과 한 청장, 한 청장의 부인은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골프 로비’의 개요는 이렇다. 한 청장이 지난해 12월25일 한나라당 강석호 의원을 비롯해 포항 지역 유력 인사들과 경북 경주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동서인 신 아무개씨와 함께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4대 사정기관장(국정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 인사를 앞두고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에게 로비를 벌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의혹이 제기된 후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한 청장은 사표를 제출했다.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기도 전에 4대 사정기관장 중 한 명인 국세청장이 경질되는 상황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국세청장 퇴진의 막전 막후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 이 사건은 내부고발 형식으로 이뤄져서 내부 알력 다툼으로 소개되었다. 해당 그림이 화랑가에 매물로 나왔다고 공개한 갤러리 대표가 한직을 전전하는 국세청 국장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전직 국세청장 부인이 이를 확인해주면서 한 청장과 원한 관계인 전·현직 간부들이 한 청장을 공격하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현직 국세청장과 전·현직 간부들의 파벌 싸움은 국세청 내 TK 세력 대 비TK 세력의 갈등으로도 해석되었다. 충청 출신인 한 청장을 TK 출신들이 끌어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 내부 갈등으로 촉발된 이번 사건은 곧 4대 사정기관장끼리의 암투로 확대해석된다. ‘그림 로비’ 파문이 일어난 직후 한 청장이 대통령 측근과 골프를 치고 친인척과 식사를 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다른 권력기관에서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4대 사정기관장의 상호 견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4대 사정기관에 속한 한 정보 담당자는 이번 갈등을 ‘기관장들끼리의 의자 빼앗기 게임’에 비유했다. 4대 사정기관장 중 이번 인사에서 한두 명만 살아남는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서로 물어뜯기식 서바이벌 게임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조연으로 등장해 주연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곳은 바로 검찰이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한 4대 사정기관장의 상호 견제는 다른 기관장 뒷조사하는 정황이 포착되기까지 하는 등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달았다. 기관장들에 대한 각종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고(그중 일부가 요즘 기사화되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를 놓고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국세청 측이 자료를 검찰에 제공하지 않고 이를 가지고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4대 사정기관장 암투 표현화돼


한 여권 관계자는 4대 사정기관장 암투를 ‘능상(왕을 능멸한 죄)’이라 표현했다. 왕의 면전에서 신하들이 멱살잡이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도 이번 파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황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인사 파동은 ‘예고된 참사’였다. 청와대가 교통정리를 하지 않고 방치해서 결국 정권 자체가 우스워지는 상황이 벌어졌다”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사안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조·중·동에서 매일 다른 기사가 나오고 있다. 이는 이번 사안이 갈 데까지 갈 사안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정기관장이 현직인 상태에서 이런 뭇매를 맞는 것은 정권에 치명적인데 선제적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뒤늦게 청와대는 한 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서둘러 4대 사정기관장 인사를 단행하기로 했다.



한 청장 사퇴와 4대 사정기관장 인사로 국세청 내부 갈등과 4대 사정기관장끼리의 갈등은 일단 어느 정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한 청장의 사퇴가 이명박 정부 2기 내각 구성의 예고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1년 전 인수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 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당선자 보좌역이던 정두언 의원 측은 한상률 청장에게 노무현 정부 시절 국세청이 작성했다고 알려진 ‘MB 파일’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한 청장은 정 의원 측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정두언 의원이 MB 개인 자료를 요구한다’며 이를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했다. 당시 정 의원 측이 한 총장 유임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어 둘 사이는 좋지 않았다. 



한 청장의 보고는 정두언 의원 실각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정 의원이 대통령의 약점까지 알려고 한다고 오해한 이 의원은 이때부터 정 의원을 본격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 의원이 할 일을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정 의원은 한번 잃은 신뢰를 끝내 만회하지 못했다.

    

한 청장이 경질되면서 정두언 의원과 이상득 의원의 관계 정상화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이미 이상득 의원은 얼마 전부터 정 의원을 불러 정무적 조언을 듣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둘은 묵은 앙금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정 의원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박영준 전 비서관도 최근 정두언 의원 측에 측근을 보내 화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흐름은 2기 내각 구성을 앞두고 권력의 축이 재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재구축되는 ‘구주류’와 각축하게 될 세력은 ‘이상득 책임론’을 내세우는 ‘신주류’다. ‘신주류’의 배후에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있다. 한 청장 사퇴와 4대 사정기관장 인사는 ‘구주류’와 ‘신주류’ 간의 승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되고 2기 내각 구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