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가 끝나고, 우연히 민주당 의원들의 뒤풀이 자리에 합석했습니다. 8명 정도의 민주당 의원들이 있었는데, 촛불집회 정국에 대한 허심탄회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술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생맥주를 마셨습니다. 정치인과 알(양주잔이나 소주잔) 없이 맥주를 마시니 기분이 묘하더군요(가끔을 알 없이 노른자-양주나 소주-만 넣기도 하죠). 그동안은 손학규 대표가 의원들이 집회를 마치고 오면 청진동 해장국집에 불러서 해장국을 사줬다고 하더군요.
모두들 사제단 덕분에 촛불집회가 다시 본연의 평화 시위 모드로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고 경탄하고 있었습니다. 촛불집회 매니아가 되어 “자꾸 오게 돼. 궁금해 죽겠어. 판이 계속 바뀌니까”라고 말하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이 나서니까 된거지, 우리가 나섰으면 될 일도 안 됐어”라고 자학하는 의원이 있었는데, “대선 때 봐봐, 그렇게 끌어 모아도 5백명밖에 안 왔잖아. 그땐 완전 시베리아였지”라고 장단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민노당이랑 진보신당 깃발이 안 보이던데. 당분간 깃발은 좀 자제할 필요가 있어”라고 말하며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견제하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시민들이 민노당과 의원들과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에게만 애정을 준 것이 못내 섭섭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이날 맥주집에서는 민주당 의원의 사인을 받아가는 시민도 있었고 악수를 권하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또 한 잔 하자고 의원을 불러가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촛불집회를 평화집회로 돌린 ‘수훈갑’으로 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를 꼽았습니다. “촛불 스타가 또 바뀌었어. 강기갑에서 진중권으로 바뀌더니, 이제 김인국 신부가 완전 스타야”라고 말하자 모두들 동조했습니다(그러더니 갑자기 저를 보고 ‘어 고기자가 김인국 신부를 닮았는데. 머리만 사자머리로 하면 딱인데’라고 하더군요. 흠....칭찬 아닌 것 같은데...). 5월의 강기갑, 6월의 진중권, 7월의 김인국, 8월의 촛불 스타는 누구일까요?
한 의원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촛불계보’를 만들고 7월5일 평화대행진에 당 차원에서 결합하자고 주장하자고”라고 말하자 동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 의원은 “우리당 의원이 한 50명 정도는 와야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촛불계보’를 제안했던 의원은 종교계가 촛불정국을 정리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지금 문제는 판이 정리가 안되는 거야. MB가 ‘재협상’을 할 수도 없고, 국민이 MB를 퇴진시킬 수도 없고, 그게 문제지. 종교계가 ‘이렇게 이렇게 정리하자’하면 정리될 수도 있을꺼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민주당 의원들이 경찰에 맞은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험담이 오고 갔습니다. 한 중진 의원이 “어떻게 그렇게 국회의원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려. 전두환 때도 국회의원들이 데모했지만 붙들어다 멀리 내려줬지, 때리지는 않았어. 이명박이 전두환보다 더 포악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의 김경준 기획입국 수사 관련 ‘뒷담화’로 자연스럽게 주제가 바뀌었습니다. 이날 들은 ‘특종’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민주당 의원 중에서 대선 당시 에리카 김을 만나고 온 의원이 있었는데, 검찰이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김경준이 소환된 뒤에 만났기 때문에 기획입국과는 관련이 없겠지만 그래도 검찰이 6개월 동안 ‘삽질’을 하고도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 한심해 보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에리카 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사 당시 이메일과 핸드폰 통화내역 조회가 정말 적나라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디어디 이메일은 검찰이 영장도 없이 열어본다더라. 핸드폰 통화내역 조회가 되니까 명의가 다른 핸드폰으로 중요한 통화를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갑자기 이명박 정부에서는 도청이 이뤄질 수도 있으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도청을 피하는 노하우들도 오고 갔습니다. 한 과기정위 출신 의원이 “국회는 도청지역이다. 국회 반경 2km 도청된다고 보면 된다. 달리는 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상대방 핸드폰에 전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말하자 또 다른 과기정위 출신 의원이 “이동기지국으로 추적하면 그것도 도청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중진의원이 “옛날 동교동계처럼 해야겠구만. 메모한 장 남기지 않는 식으로”라고 씁쓸하게 말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과 술을 마시면서 드는 전체적인 느낌은,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야당 의원다운 ‘야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촛불집회가 참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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