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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지못미' 프로젝트/'국립오페라합창단' 부활하라

해단된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이 쓴 눈물의 편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3. 23.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과
경영 효율화를 기한다는 명분으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했습니다.

이에 국내외 음악인들이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를 반대하며
단원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자 경향신문에는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이신 
나영수 선생님의 지지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국립오페라합창단 강유미 단원이 쓴
'네티즌여러분께 보내는 편지'를 공개합니다.
한번 천천히 읽어보시고
이들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해단된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이 시민이 준 장미꽃을 들고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장미꽃을 전해준 시민은 42명의 단원이 전부 복직되기를 바란다며 42송이의 장미꽃을 선물했다.




네티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로 국립오페라합창단에 입단한지 5년차가 된 강유미 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저희 합창단의 얘기 보다는 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사실 합창단원이 되기 위해서 노래를 시작 하지는 않았습니다..그저 노래가 좋았고 할 줄 아는 게 그것 밖에는 없으니까...또 제일 잘하는 거니까..그래서 어렵게 선생님을 구하고 레슨이란 것을 받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동기들은 유학을 나갈 때 저는 국립 오페라 합창단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들 국립에 들어갔다고.. 굉장히 축하해 주었어요... 하지만 입단하고 나서야 알게 된 저희 급여는 사실 부끄러운 수준이었지요..

하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성악을 전공 하고서도 일자리가 없어서 피아노 학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고.. 기껏해야 동요레슨 정도로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들도 많았으니까요.. 이런 때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바로 무대였습니다.. 최고의 무대에 최고의 가수들과 최고의 지휘자와 함께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최고의 무대에 조금이나마 한 몫을 할 수 있다는 것. 저는 그렇게 오페라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의 전당에 오페라 한편을 올리려면 저희는 꼬박 두 달 동안 그 한 작품에 매달려 연습을 합니다.. 지겹게도 같은 액팅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그렇게 연습을 하고나면 틀림없이 좋은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힘들었던 모든 걸 다 보상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게 저희의 자부심 이었고. 그 감동이 저희를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저희가 월급을 올려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는데.. 오페라단은 저희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아요.. 그게 제일 답답합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하는 사람은... 음악하는 사람은...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음악에 문외한인 관객들도 그 마음은 읽을 수 있게 마련이거든요.. 진실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감동시킬수가 없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무대에서 다시는 진실 된 음악을 할 수 없게 될까봐.. 그것이 제일 두렵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무대에 바쳤던 저희의 열정과 노력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저희의 소박한 꿈을 이렇게 한 순간에 꺾어버렸어요.. 연출가 출신이라는 저희 단장이라는 분이 이렇게 메마른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깝고 부끄럽습니다..

여러분 저희는 할 줄 아는 게 노래밖에는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저희의 힘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 저희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저희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저희가 다시 기쁘게 노래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법적 근거가 없고 경영 효율을 기한다는 명분으로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를 결정했다.



작년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던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를 다들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드라마가 처음 방영 되었을 때, 솔직히 음악을 전공한 저로서는 얼마나 깊이 다룰 수 있겠나.. 하는 우려와, 겉으로 보이는 음대생들의 이미지 때문에 우리들의 고충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간과하고 지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죠.. 저도 그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 되었으니까요..

처음엔 강마에의 이미지가 너무 차갑고 완벽주의자라서,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강마에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은 프로다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자기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냉철했고,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용납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최고로 이끌어 내기위한 남모를 열정!! 숨은 노력!! 차가움으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음악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 자기밖에는 모를 것 같던 사람이 단원 한명 한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 힘없는 그들에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카리스마!! 이것이 바로 강마에의 매력이었죠..

불행하게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보았던 단원들의 모습과 우리는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비정규직이라 받아야 했던 일방적인 해고 통보, 드라마에서는 시장이 바뀌어서 쫓겨났지만, 저희는 문광부 장관이 바뀌면서 졸지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쫓겨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끝까지 그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아니 음악을 하고 싶은 그 순수한 마음에 연습에 매달리고 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저희의 모습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강마에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구명해 주고자, 또 음악가의 자존심으로, 음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장의 밑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굽신거리기를 거부했습니다. 드라마에서 그들이 그 후에 복직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의 지휘에 맞추어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이더군요..

그런데 지금 새삼 그들이 부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희를 지키고 저희의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우리의 단장님이 앞장서서 저희를 내몰고 있습니다. 외부의 압력이 있었는지, 그런 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식구를 밖으로 버릴 때에는 그것을 충분히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명분과 설득, 이해와 배려가 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어떤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해고 통보부터 받았습니다. 이런 행동을 한 분이 우리의 단장이십니다. 저희는 적어도 이 직장에서 일 년 이상, 칠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평생직장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의 일터였고, 그 분이 오시기 전까지는 이런 일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적어도 한 단체의 단장이라면, 그것이 국립이라면, 이렇게 쉽게, 이렇게 갑자기 또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단장은 일방적인 해고 통보부터 하고서 그 후에 협상을 하자고 합니다. 저희는 원직 복직이 되기 전까지는 그들과 협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찾아야할 최소한의 권리이고 자존심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강마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별이지 꿈이 아니라고.. 그것은 가질 수도 없는.. 시도조차 못하는 쳐다만 봐야 하는 별이라고.. 조금이라도 부딪치고 애를 쓰고 하다못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꿈이라 말 할 수 있는 거라고.. 꿈을 이루라는 게 아니라 꾸기라도 해보라고..”

저희가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은 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다시 무대에 서는 꿈을 꾸면서 저희는 계속 부딪치고 애를 쓸 것입니다.. 저희에겐 강마에 같은 단장은 없지만, 여러분들의 응원이 있습니다!!.. 끝까지 싸워서 꼭 이기겠습니다..


예술의전당 앞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이 거리콘서트를 열고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3월20일에는 세 번째 ‘국립오페라합창단 해단 반대 촛불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벌써 세 번째였습니다.. 추운 날 발을 동동 굴러가면서 처음 촛불음악회를 했을 때는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뭐가 그리 서럽고, 뭐가 그리 슬펐는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잃고 나니까 그 모든 게..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너무 그리웠더랬습니다.

우리의 무대가 코앞에 있는데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그렇게 서글프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억울해서요? 물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농성한다고, 투쟁한다고 잊고 있던 우리의 노래가.. 또 지난 몇 달간 상처받고 지쳐있던 우리 단원들이 오랜만에 함께 웃으며 노래하고 있는 모습이... 그저 좋았습니다.

처음 성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상당히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성악과를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너무 한정되어 있으니 밥벌이도 못할까봐 걱정하신 거였겠지요. 그래도 노래가 아니면 대학 안 간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 가면서 성악과 라는 곳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학교에 들어가긴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행여나 감기에라도 걸릴까 수능이 끝나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 하고, 컨디션 조절한다고 말수도 줄여가면서 레슨을 받으러 다녔어요. 대학 입시 때는 1분30초 정도씩 두곡을 부르지요. 그 짧은 시간에 당락이 결정됩니다. 떨어서 목소리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그동안 입시하나를 위해 1년 에서 길게는 3년 이상씩 공부 했던 게 물거품이 되어버리죠.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는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어요.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성악을 전공하고서도 일자리가 없어 노래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비싼 등록금에 레슨비를 들여가면서 공부해 왔지만, 받아주는 곳은 한정되어 있고, 유학을 다녀온다 해도 그 성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너무나 적습니다.

외국에는 전문 연주가 들이 많이 있지요. 그 사람들은 오로지 연주만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주만 해서는 안정된 삶을 살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레슨을 해야 하고, 강의를 해야 하고, 지휘를 해야 하지요. 아무리 외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성악가라 하더라도 귀국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름답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봐 왔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저는 우리 합창단의 이번 사건이 비단 우리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성악도들의 일이고, 예술인들의 일입니다. 예술가들이 더 이상 불안정한 고용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사랑을 노래하고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입지가 견고해지고 우리의 영역이 넓어 질 수 있도록 모두가 똘똘 뭉쳐야 할 때라고 생각 합니다. 제2, 제3의 국립오페라 합창단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까요.

오늘 연주를 보러 와주신 어떤 분께서 우리 단원 42명이 온전히 복직되길 원하신다며 장미꽃 42송이를 사오셨어요. 세상이 힘들다, 힘들다 해도 아직은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일이지만, 이렇게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힘내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구요..너무 감사해요.

지금 저희는 많이 어렵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받은만큼 돌려 드릴 수 있는 저희가 되고 싶습니다. 꼭 다시 무대에서 보답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