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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SI 누리꾼 수사대

블로거 미디어몽구, "어쩌죠, 저 잡혀갈 것 같아요"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7. 3.

블로거 '미디어몽구'가 최근 경찰에 소환되었습니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한 보수단체 대표가 노인을 폭행했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렸는데,
그 보수단체 대표가 '미디어몽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을
경찰이 1년이나 지나서 다시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제(7월2일) 점심 때 위로 겸 취재를 위해서 몽구님을 만났습니다.
몽구님 얘기를 들어보니 경찰이 몽구님을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것 같았습니다.
몽구님이 강남경찰서에 도착하자 담당 형사는 조금 있다가 그 보수단체 대표를 불러서,
대질신문 비슷하게 조사했다고 합니다.

저도 명예훼손 소송을 몇 번 당해보았지만, 
경찰 조사를 받는데 고소자를 불러서 조사하는 경우는 좀 이례적인 것 같습니다. 
경찰이 고소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검찰에 송치되었을 때, 약식기소를 넘어서 정식기소까지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블로거의 입을 막는 '제2의 미네르바 사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래서 '블로고스피어'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 공동대응하자는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몽구님의 일은 다른 시사블로거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평범한 블로거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몽구님을 혼자 외롭게 두면, 다른 블로거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하나는 당시 사건과 관련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소가 되었을 때, 재판비용 등 소요비용을 모금해서 지원하는 것입니다.
(민사소송을 함께 거는 경우 손해배상을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이 다급합니다.
지난해 6월21일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와 보수단체 집회가 함께 열렸습니다.
그때 우산에 촛불집회 반대 푯말을 붙인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년 남성이 바로 몽구님을 고소한 보수단체 대표입니다.

당시 몽구님은
그 보수단체 대표가 촛불집회에 참석한 노인을 때리자
사람들이 그를 쫓아가서 잡아 폭행하고 
이를 예비군들이 말렸다는 내용의 글과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보수단체 대표는  
자신은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피해자인데 오히려 가해자로 묘사되었다며
이에 대해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몽구님이 당시 그 보수단체 대표가 폭행하는 장면은 찍지 못하고
도주하는 장면과 사람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만 찍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몽구님이 그 보수단체 대표가 노인을 폭행했다고 썼던 이유는
당시 현장에서 들은 증언과 다른 언론의 관련 보도를 통해
폭행을 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현장 상황을 목격한 시민의 제보가 절실합니다.
지난해 6월21일 밤 우산에 촛불집회 비판 푯말을 붙인 중년 남성이 노인을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하신 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물론 그 중년 남성이 노인을 폭행하지 않고 억울하게 촛불시민에게 폭행당했다는 것을 목격하신 분이 있다면, 그 제보도 환영합니다.)

블로거 여러분,
누리꾼 여러분,
당신의 힘을 보여주세요.

농민 CF를 찍어주고 있는 블로거 '미디어몽구(왼쪽에서 두 번째)'



주> 이와 관련해 제가 <PD저녈>에 기고했던 글을 올립니다.

회개하라, 감옥이 가까웠느니라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자유가 군부독재 시절로 후퇴했다고 말하는 언론인들에게 보수단체 사람들은 항변한다. “무슨 얘기냐. 할 말 다 하지 않느냐. 군부독재 시절로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할 말은 다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할 말 다 하는 사람들이 그 뒤에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가 문제다.

편집국 옆자리 주진우 기자는 얼마 전 검사 6명에게 3천6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BBK 김경준씨가 검사들이 회유와 협박을 하려한다는 메모를 누이인 에리카 김에게 보냈는데, 그 메모를 단독 보도한 것 때문이었다. 메모가 가짜였던 것도 아니었는데, 반론권을 주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배상 판결을 받은 것이었다.

매일 주야로 브리핑을 하고 기자들을 끼고 사는 검사들이 반론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한 기사의 공정성을 따질 때 기사 안에서만 따지지 않는다. 그와 관련한 보도 전체를 보고 알려지지 않은 소수의 입장을 전할 경우, 비록 일방적이라 하더라도 공정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었다.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PD수첩> 김은희 작가는 이메일을 압수수색 당했다. 지인과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 때문에 검찰에 기소 당했다. 아찔했다. 김 작가와 주고받은 메일 속에 ‘검찰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 문장이 있을 터인데, 나중에 그것을 트집잡을 것 같았다. 우리는 ‘적개심’과 ‘혐오감’이 죄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논객 중 한 명인 진중권 교수는 요즘 뉴라이트 단체의 검찰 고소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부 압력을 받은 학교 측에서 그의 강의를 개설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정부는 역으로 강의를 하지 않고 강사료를 받았다며 ‘부당수령’이라고 몰아붙였다. 사람 한 명 파렴치범 만드는 것 잠깐이었다. 진 교수와 블로거들이 만나는 간담회를 주선하고 지켜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앉아있겠지’

엊그제 동료 블로거 ‘미디어몽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찰에 소환된다는 내용이었다. 1년 전 올렸던 동영상에서 보수단체의 폭력행위를 담은 것 때문이었다. 왜 1년 전 일을 지금에서야 조사하는 것일까. 그를 상담해 준 변호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내용이다.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장담 못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 전화가 바로 누가 소환되었다 혹은 누가 연행되었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에는 좌파 매체를 표방하는 <레프트21>의 수습기자로 일하는 김지윤씨가 긴급 체포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누리꾼들에게 ‘고대녀’로 알려진 고대생이었다. 용산참사 관련 불법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가러 나오다 붙잡혔다.

눈을 뜨면 새로운 사람이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두려움을 정복하자’며 ‘겁테크’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꾸 움츠려드는 나를 다시 일깨운 사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죽음으로 말하려고 했던 것을 살아있는 우리가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의 감옥’ 보다는 ‘마음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식은 내 구속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사형수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은 자신의 죽음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이다.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자 공포심이 사라졌다. 그동안 품앗이를 해둔 것이 많아서 잡혀가면 떠들어 줄 곳이 많을 것 같았다. 기자일 뿐만 아니라 블로거이기까지 하다. 주류와 비주류 미디어 양쪽 다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나의 억울함이 알려지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6월24일의 일이었다. 그 날 저녁 문화연대에서 주최하는 덕수궁 대한문 앞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방해로 토론회는 열리지 못했다. 주최 측은 토론회 대신 발제자와 패널들에게 자유발언을 시켰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 앞으로 나가서 발언을 시작했다.

그때, 자신을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라고 밝힌 경찰간부가 5분 후에 강제해산시키겠다고 확성기로 말했다. 1차2차 경고 방송을 마쳤고 이번이 마지막 경고라는 것이었다. 5분 후, 경찰은 약속을 지켰다. 순식간에 시민들을 밀어냈다.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있던 나는 고립된 섬이 되었다.

출장 다녀온 길이라 짐이 많았는데, 그 혼비백산의 와중에 짐이 분실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조용히 연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경들은 모두 나를 지나쳤다. 전경들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시민 몇몇이 연행되는 모습이 보였다. 머릿속에 상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개하라, 감옥이 가까웠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