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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

이제 MBC와 KBS에 빚을 갚아야 할 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6. 14.

이제 MBC와 KBS에 빚을 갚아야 할 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언론통제의 사슬에 얽혀들고 있는 MBC와 KBS를 바라보는 내 느낌이 딱 그렇다. 보수 정부와 조중동이 가장 집요하게 매달릴 일이 바로 방송 민영화를 통한 언론장악이라고 보았는데, 예상대로 후안무치하게 달려들고 있다. 


‘시사저널 파업’과 ‘시사IN 창간’을 겪으며 MBC와 KBS에 많은 신세를 졌다. 당시 조중동은 시사저널 사태를 철저하게 외면했었다. 아마 그들의 시각에서는 사장이 기자들 몰래 기사를 빼는 것은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사저널 사태가 그나마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미디어오늘-기자협회보-오마이뉴스-프레시안-한겨레신문(한겨레21) 등이 꾸준히 보도해주고, MBC와 KBS에서 비중 있게 다뤄줬기 때문이었다.


그때 인터뷰를 하면서 MBC PD에게 말했었다. “보수의 문제가 무엇인줄 아는가? 부패? 아니다. 부패 이전의 문제가 있다. 바로 몰염치다. 보수정부가 들어서면 MBC도 ‘몰염치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꼭 은혜를 갚겠다”라고. KBS PD에게도 말했었다. “우리의 오늘은 당신들의 내일이다. 우리가 겪는 일을 잘 봐둬라. 내년에 똑같은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하겠다”라고.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랬는데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보수정부와 조중동은 몰염치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언론장악을 위한 마수를 뻗치고 있다. 은혜에 보답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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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PD 수첩은 시사저널 사태를 두 번이나 다뤄줬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드문 일이었다. 내 기억에 주로 사이비 종교 문제가 두 번 다뤄진다. 문제를 드러낼 때 한 번, 한참이 지나도 그 문제가 계속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사이비종교도 아닌데, PD수첩은 시사저널 사태를 두 번이나 다뤄주었다.


그 대가로 강지웅 PD와 MBC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에게 2억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한 푼도 물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금 사장이 시사저널 사태를 보도한 MBC와 PD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보도된 내용이 원고들에 대한 명예훼손적 사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보도된 내용은 모두 진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어 위법성이 없다”라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월에 <삼성공화국, 언론은 침묵하라?>라고 시사저널 사태를 다뤘던 PD 수첩은 7월에 다시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시사저널과 결별선언을 하고 신매체를 창간하기로 한 기자들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에는 이춘근 PD가 왔다. 이 PD는 군대 훈련소 동기였다. 춘근이는 훈련소에서 여러 번 개인기를 선보이는 등 재능이 많아 예능PD가 되었을 줄 알았는데, 까칠까칠한 시사PD가 되어 있었다. 


<삼성공화국, 언론은 침묵하라?> 편이 시사저널 사태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는데 기여했다면, <기자로 산다는 것>은 시사IN 창간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PD수첩을 통해 신매체 창간 소식이 알려지면서 수억원의 성금이 몰려들었다. 그 돈을 기반으로 창간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뉴스 후>에서도 시사저널 사태와 삼성의 언론통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 여러 번에 걸쳐 세게 다뤘다. 금창태 사장은 <뉴스 후>에 대해서도 명예훼손 소송을 걸겠다고 했었는데, 이 소송은 진행하지 않았다. 같은 기자들이라서 그런지 <뉴스 후> 팀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시사저널 사태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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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는 <생방송,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에서 시사저널 사태를 줄기차게 다뤄줬다.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PD들이 만드는 프로고 <미디어포커스>는 기자들이 만드는 프로다. 두 프로그램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열심히,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각도로 시사저널 사태를 다뤘다.


KBS PD와 기자들에게 ‘우리의 오늘이 당신들의 내일이다’라고 경고했을 때, 그들은 “KBS는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건전한 조직이 되었다. 문제가 생겨도 잘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충고했다. “‘완장’들을 조심해라. 세상이 바뀌면 ‘완장’을 차고 나타나는 사람이 생긴다. 그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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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KBS <퀴즈 대한민국>에 큰 신세를 졌다. 파업이 점점 침체기에 접어들고 생활비가 바닥날 무렵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해 ‘퀴즈영웅’에 등극하면서 시사저널 파업도 알리고 2000만원의 상금으로 생활비도 벌충할 수 있었다. 


파업이 4개월째 지속되면서 기자들의 적금통장이 하나하나 해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도 마찬가지였다. 맞벌이였지만 아내는 출산휴가 중이었다. 둘이 벌 다 둘다 못 벌게 되니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없는 돈에, 서점에 가서 상식 책을 몇 권 샀다. 그리고 <퀴즈 대한민국> 예심에 갔다. 300명 정도가 와 있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탓인지 합격했고 점수가 상위권이어서 출연 기회도 빨리 왔다.


녹화날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우승이 문제가 아니라 상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승과 별개로 1000만원 2000만원 상금이 걸려 있는 문제를 맞춰야 했는데,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서적까지 봐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궁상맞았다. 다른 출연자들이 대기실에서 환담을 나누는 사이, 나만 오답노트를 보면서 한 문제라도 더 맞춰보겠다고 궁상을 떨었다. 시골에서 농사짓다 오신 할머니도 여유롭게 농담 따먹기를 하는 그 순간 젊은 기자는 귀를 막고 오답노트에 눈을 묻었다.


신은 내 편이었다. ‘자이로스코프’ ‘일심’ 천만원짜리 상금 퀴즈를 연거푸 두 개 맞춰 2천만원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시사저널 파업에 대해서 말한 부분은 편집에서 잘려나갔지만 짜릿한 순간이었다. 살다가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고, 더 큰 행운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때만큼 짜릿하지는 않을 것 같다.


시사IN 기자로서, 인간 고재열로서 지난 한 해 동안 MBC와 KBS에 큰 신세를 졌다. 이제 갚을 때가 되었다. 조그만 잡지사 기자가 무엇을 얼마나 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함께하고 싶다. MBC 파이팅! KBS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