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학생회 선거가 화제입니다.
그동안 득세하던 비운동권 후보를 누르고
운동권 후보들이 다시 당선되고 있습니다.
국민대 외국어대 충남대 울산대
등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연세대에서는
여전히 비운동권 후보가 강세입니다.
운동권은 총학생회 후보도 내지 못했습니다.
얼핏 보면 운동권이 쇠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복선이 있습니다.
비운동권이 운동권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스스로는 비운동권이라고 규정하지만
등록금 투쟁도 벌이고
비정규직 철폐 운동도 벌이고
촛불집회에도 나갑니다.
운동권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기존 운동권과 다른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족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NL이니 PD니 하는 족보에 속해 있지 않고 스스로 족보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세춘추 정동진 기자의 글로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감상하시죠.
(글 - 정동진/연세춘추 기자, 기획 - 고재열)
이한열 열사와 노수석 열사의 얼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교정, 학생운동의 성지라고 불리는 연세대학교! 하지만 올해 총학생회(아래 총학) 선거는 운동권 계열의 선본이 단 하나도 출마하지 않아 최근 10년간 처음으로 비운동권끼리 2파전으로 치러진다.
<연세36.5+>는 2008학년도 총학 <연세36.5>계열의 선본이다. <연세36.5>는 학내에 아무런 지지기반 없이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해 단숨에 총학 자리를 꿰찼다. 이들은 ‘학생권’을 표방하며, 많은 복지 공약들을 실현시켜 학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연세36.5+>는 지난 총학의 명성을 이어받아 많은 학생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선본의 정후보는 지난 총학에서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박준홍(경영․05)씨다.
반면 상대 <채널 연세>선본은 학내에 아무런 기반이 없는 선본이다. 학내에 지지기반이 없어 지명도에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선본원이 상대 선본에 비해 턱없이 적어 제대로 된 선거운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1 운동권, 눈높이를 낮추고 하향지원하다
그동안 연세대학교 총학 선거는 항상 운동권 계열 선본, 비운동권 계열 선본, 기독교단체 관련 선본이 맞붙
어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하게도 총학 선거에 운동권 선본이 단 하나도 출마하지 않았다. 연세대학교에 운동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면 운동권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정답은 ‘단과대 학생회’다.
운동권들은 지난 2년간 총학 선거에서 내리 2연패를 당하면서 극심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총학 선본으로
내세울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권들은 단과대 학생회로 눈을 돌렸다. 연세대학교 신촌캠에는 총 15개의 단과대 학생회(아래 단과대라 지칭, 원래는 총 16개의 단과대가 있음)가 있다. 그 중 전통적으로 학생운동에 관심 없는 단과대는 6개다. 운동권은 남은 9개 단과대 중 6곳에 후보를 냈다. 그 중 몇몇 곳은 운동권끼리 각축을 벌이는 곳이 있다. 또 일부 운동권 세력은 같은 선본이름('Step Up')으로 네 곳에서 후보를 냈다.
운동권이 후보를 낸 곳은 대부분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 총학, 단과대 학생회, 총여학생회 대표가 모여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의사결정 회의체)에서 입김이 강한 단과대다. 운동권 세력은 총학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되면서 단과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려고 하고 있다. 운동권 세력이 출마한 대부분의 단과대 선거에서 운동권 세력의 당선이 확실시 되면서 오는 2009년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간에 관계설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 총학생회 선거인가? 학생복지위원회 선거인가?
이번 총학 선거에 출마한 두 선본은 유사한 점이 굉장히 많다. 두 선본 모두 비권이라서 그런지 공약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고, 학교와의 관계 설정에서도 유사한 부분이 상당부분있다.
총학생회 선본의 공약을 보면 △재수강 제한제도 폐지 △송도캠 학사단위 신설 △셔틀버스 운영 확대 △등록금 문제에 있어서 타 학교 총학생회와 연대 △졸업학기 등록금 환급제도 △외부단체와의 교류를 통한 인턴십 발굴 △학내 ATM기 수수료 무료 △학생식당 식단 개선 △자취학생들 택배보관 △기부금 모금 등 대부분이 복지공약이다.
두 선본 모두 비권 선본인 만큼 학생들 복지에 신경을 쓰겠다는 의지를 공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학내에서는 총학 선본들이 복지 중심적인 공약을 내거는 데에 의견이 분분하다.
몇몇 단체에서는 이번 총학 선거가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는 뉘앙스의 자보를 게시했다. 총학 선본에 출마한 두 선본 모두가 자신만의 확실한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총학은 학생들이 가진 가능성을 하나로 집중시키고, 그 가능성을 이끌어 내 주체적인 학생들을 만들어야하는데, 두 선본은 복지정책에만 신경을 써 (이들이 당선될 경우) 총학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또 일부 학생들은 ‘총학 선본들이 내세운 공약은 총학의 공약이 아니라 학생복지위원회가 내걸만한 공약’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총학 선거 후보들이) 학생들의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을 제시했다”며 “2008학년도보다 더 나은 2009학년도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를 나타내고 있다.
두 선본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마다 ‘학생들을 위한다’는 의도의 문구로 유권자들의 표심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연 이번에 당선될 총학이 공약에 기대감을 표하는 유권자와 우려를 표하는 유권자, 양 측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3. 총학생회 선거는 '후보들의 경쟁'이 아닌 '무관심과의 전쟁'
해마다 지적되는 총학 선거 무관심 현상은 올해 비슷한 성향의 선본이 출마한 것과 맞물려 더 증폭되고 있다. 두 차례 열린 합동 유세에서는 유세장이 공터를 연상시키게 할 정도로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세장에는 각각의 선본을 응원하는 선본원들만 있을 뿐이었다.
지난 목요일에 열린 정책토론회(아래 토론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개방된 장소에서 토론회를 가졌으나 정작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역시 각 선본의 선본원들이었다. 토론회장에는 단 한명의 일반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해마다 총학 선거가 무관심 속에 치러진 것은 이미 관성화 됐지만, 올해 유달리 학생들이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두 선본간의 인지도와 조직력 차이에 있다.
두 선본은 일단 조직력과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연세 36.5+>는 선본원이 <채널 연세>의 선본원보다 훨씬 많아 대규모의 효과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상대 선본보다 노출이 더 많은 것이다. 또 이 선본이 맥을 잇겠다고 하는 지난 총학이 대형 복지 공약들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지난 2007년 이전 총학과의 차별화에 성공함에 따라 이 선본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호감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연세36.5+>의 공약과 <채널 연세>의 공약의 맥락이 뚜렷이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하다는 것도 무관심의 이유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두 선본이 공약도 비슷하기 때문에 공약을 성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그리고 이미 2008년에 그 능력이 검증된 선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총학 선거 투표가 끝나지 않았다. 이미 한 쪽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여론대로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역전극이 일어날 것인가는 유권자들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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