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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71

오늘 광화문에 촛불 100만개가 켜지면? 광화문에 켜지는 촛불 숫자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그룹 중 하나는 바로 청와대 참모들이다. 거칠게 말해서 광화문에 켜지는 촛불 숫자에 따라 청와대에 남느냐 밀려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최대 규모인 20만개의 촛불이 광화문에 켜졌다. 이 20만개의 촛불이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날렸다. 라고 말하면 과잉 해석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애초 청와대 수석은 소폭으로 바꾸고 문제 장관을 교체하는데 초점을 두었던 개편안은 장관보다 청와대 수석 교체를 대폭으로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장관은 국회의 임명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교체가 매우 번거롭다. 반면 수석 교체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런데 수석보다 장관 교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청와대.. 2008. 6. 10.
촛불집회장에서 건진 촌철살인 명언 “국민은 또다시 속지 않‘읍’니다” “그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은 것뿐인데.” 국민이 ‘100년 같은 100일을 보내고’ 그 심정을 압축해서 주옥같은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에서 어떤 꼼수를 내도 “또다시 속지 않‘읍’니다”라고 말하는 국민, ‘작렬’하는 풍자와 해학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촛불시위 참여 시민의 명언을 인터넷과 거리에서 건졌다. 여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은 바로 ‘닭장차 투어’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전경 버스를 타고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경험을 ‘닭장차 투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 네티즌은 이 특별한 여행에 대해 “닭장버스 및 경찰서 관광비용은 일절 무료, 경찰서에서 무료 식사 대접, 경찰서 홍보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무료 관광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의 강경.. 2008. 6. 9.
정선희는 반성하는데, 이상득은 왜 침묵하는가? 정선희는 반성하는데, 이상득은 왜 침묵하는가? 개인적으로 정치는 ‘조금 안다’고 생각한다. 3년째 국회를 출입하며 정치부 기자 일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조금 알았다’라고 생각한다. 5년 동안 대중문화 담당을 하면서 나름대로 보고 들었던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과 ‘대중문화판’은 닮은 점이 많다. 일단 다른 영역과 달리 ‘판’으로 불리는 것부터 닮았다. 교육계를 ‘교육판’이라 부르지 않고 재계를 ‘재판’이라 부르지 않지만 이 두 영역에서는 유독 ‘판’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 의미는 간단하다. 대중이 마뜩찮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의도에는 벼락을 맞아도 웃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바로 정치인과 연예인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줄 알고 웃는다는 것이다.. 2008. 6. 8.
스스로를 바보라고 했던 이명박, 바보를 뽑은 우리 스스로를 바보라고 했던 이명박, 바보를 뽑은 우리 광장의 구호가 바뀌었다.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던 목소리는 정부의 고시 강행과 강경 진압을 거치면서 어느덧 ‘이명박 퇴진’으로 바뀌었다. 취임 백일이 갓 지난 대통령을 퇴진시키자며 수십만의 군중이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 그 목소리가 귀에 따가웠다. ‘어른들이 선거를 어떻게 한거야’라는 어린 학생들의 볼멘소리는 ‘정치부 기자들이 기사를 어떻게 쓴거야’라는 소리로 해석되어 들렸다. 어딘가 숨고 싶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IMF를 일으킨 것을 본 정치부 기자들도 아마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 기간에 썼던 기사를 다시 되짚어 보았다. 혹시 면죄부가 될만한 기사가 있나 싶어서. 한 꼭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기사에서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 2008. 6. 7.
"이명박이 말하는 배후가 우리를 말하는 것 같다" “이명박이 말하는 배후가 우리를 말하는 것 같다” 다음 아고라 활동 통해 촛불집회 가두시위 주도한 네티즌 인터뷰 ‘조문환(가명)’과 ‘나호철(가명)’은 촛불집회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정보과 형사들과 국정원 직원들이 가장 애타게 찾고 있는 인물들이다. ‘다음 아고라’ 토론장을 주도하는 이들이 가두시위의 선봉에 있다고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찾아내라고 그토록 역정을 냈던 ‘과격 시위’의 배후인 셈이다.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들은 거리에 있다. 다른 참가자들보다 일찍 나와서 집회를 준비하고, 집회를 정리한 후 다른 참가자들보다 늦게 돌아간다. 이들은 정보과 형사 옆에 있기도 하다. 정보과 형사가 본부와 무전 연락을 하는 것을 엿듣고 이를 바탕으로 가두행진 방향을 바꾸기도 .. 2008. 6. 5.
21년 전 아버지가 맞았던 그 자리에서 아들이 다시 맞았던 이유 아버지가 맞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아들이 맞았던 이유 East-Asia-Intel.com 지정남 특파원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LA 타임즈 서울지국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지금도 East-Asia-Intel.com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고 있는 지정남 기자(67)에게 얼마 전 한국외신기자협회에서 헬멧과 기자 완장이 지급되었다. 지정남 기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6월10일에는 다시 최루탄이 등장하는건가? 가스마스크도 다시 꺼내야 하나. 거참. 21년이 지났는데, 변한 것이 없구나’ 최루탄으로 뒤범벅이 되고 어디서 누구에게 맞았는지 모르게 몸이 멍들어 있던 21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때 그 고생을 했던 덕분에 조국의 민주화가 앞당겨졌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든 것이 다시 과거로 잘못 되돌려진 것.. 2008. 6. 5.
시사IN 기자들이 다시 거리편집국을 차린 이유 시사IN 기자들이 다시 거리편집국을 차린 이유 오늘 아침 전체 기획회의 시간의 일입니다. 갑자기 신입기자들(박근형 변진경 천관율)이 A4 한 장짜리 기획서를 내밀었습니다. 촛불집회 현장 중계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뜨악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은 시사주간지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나오고, 잡지입니다. 당연히 중계 장비도 없습니다. 그런데 현장 중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선배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매일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그들은 시시각각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상황을 담아내기에는 주간지라는 매체 형식이 얼마나 한계가 명확한지 절감했을 것입니다. 다음 주에, 독자가 읽는 순간에도 여전히 뉴스가 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뉴스’를 써야 한다는 것이 바로 .. 2008. 6. 3.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고,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참으며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고,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참으며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며,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참으며 고재열( 기자) 사람은 때로 쓸데없이 용감할 때가 있다. 내가 그랬다. '시사저널 삼성기사 삭제 사건'을 접하고 나는 갑자기 용감해졌다. 기자들이 파업하는 동안 발간된, 이른바 '짝퉁 시사저널'의 기사에 대해 '이것이 기사면 파리가 새다'라는 글을 에 올리고 회사로부터 무기정직을 당했다. 사람들은 내가 '무지 정직'한 탓이라고 위로했지만, 곧 금창태 사장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이 날아왔다. 사람들은 때로 위험할 정도로 용감할 때가 있다. 우리가 그랬다. '시사저널 삼성기사 삭제 사건'을 접하고 시사저널 선배와 후배들은 위험할 정도로 용감했다. 사장이 편집국장도 모르게 기사를 뺀 것에 대.. 2008. 5. 9.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바로 남한산성이구나' (2007년 6월 작성)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바로 남한산성이구나' 주> 2007년 6월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지난 6월17일,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시스템 문제를 다룬 ‘노무현 대통령 언론인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도 인터넷신문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했었는데, 이 토론회를 보면서 대통령이나 언론단체 대표들이나 참 ‘한갓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업기자 입장에서 보면 그랬습니다. 비유하자면, 임기를 반 년 정도 밖에 남겨놓지 않은 망해가는 명나라(노무현 정부)와 시급한 국방(언론자유) 문제는 팽개친 조선 사대부들이 공허한 고담준론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날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청나라(삼성)의 기사 삭제 침입을 받고, ‘펜은 돈보다 강하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농성하기 시작한 지, 꼭 1.. 2008. 5. 9.
독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2007년 2월12일 작성) 독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 2백37일이 지났습니다. 이제 너무나 유명해져 버려서,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시사저널 삼성기사 삭제 파문 사건’이 일어난 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회사는 무더기 징계로 대응했습니다. 처음 파업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직장폐쇄를 당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의 싸움이 자본권력에 맞선 신성한 언론자유 투쟁이라고 그리고 경영진의 무도한 기사 삭제에 맞선 의로운 편집권 독립 투쟁이라고. 다 옳습니다. 그러나 이번 싸움의 가장 큰 의미는 독자들에게 시사저널 지면을 온전히 되돌려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권은 금창태 사장의 말처럼 편집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자들만의 것도 아닙니다. 편집권은 독자들의.. 2008. 5. 9.
'위기의 기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첫 글을 열어봅니다. 기자들이 에서 ‘삼성기사 삭제 사건’에 항의해 파업할 무렵, 파업을 알리기 위해 함께 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파업을 하는 중이라 ‘기자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써야 할 시기에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쓴 것이 역설적이기는 했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기자들이 함께 과 결별선언을 하고 어렵게 을 창간했는데, 요즘 다시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프레스 프렌들리’하다고 말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오히려 기자들이 ‘기자질 못해먹겠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스 프렌들리’가 ‘언론과 친한 정부’가 아니라 ‘압박과 친한 정부’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무엇 때문일까? 언론계에는 ‘특종기자 단명한다’라는 속설이 있다. 특종의 뒤안길에 놓인.. 2008.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