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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41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정치부 기자들은 우스갯소리로 국회의원이 299명 있는 국회에는 대권 시나리오가 299개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것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느티나무아래 출판사에서 대안적인 대권 시나리오를 공모했다. 이름 하여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더 나은 세상을 위한 우리들의 즐거운 상상’. 4개월간의 공모기간을 거쳐 20편이 뽑혔다. 본인의 2017년 대선 당선 인터뷰를 기고한 딴지일보 김창규 기자(정치부)가 가장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줘 ‘으뜸상’을 받았다. 일단 집권하면 CEO 능력이 검증된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를 총리에 임명한다고 한다. 김 기자의 기고문을 비롯해 당선작 20편이 책으로 묶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서울대 법대를 나왔더라면’이라고 가정해보는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해 역사적 상상력을 불어.. 2010. 4. 13.
'내가 노무현 추모콘서트 시즌2를 기획한 이유' (탁현민) 시민에게 권력을! Power to the people 2010 다시 공연을 준비하며 탁현민(공연연출가, 한양대 겸임교수) 지난해 여름, 뜨겁고 잔혹했던 시간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연출했던 노무현대통령 추모공연,의 연출노트를 꺼내 보았습니다. 노트 앞장에는 짧은 한마디가 쓰여 있었습니다. '잊지 말자' 다시 공연을 준비하며 저의 고민은 내내 이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또 '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말입니다.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시간도 있었고, 뜨거운 후회의 시간도 있었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사뭇 냉정하게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노보다, 후회보다, 희망보다, 중요한 .. 2010. 4. 8.
정치인 트위터러가 '사이버 호구'인 까닭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트위터 정당’을 선언했다.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트위터 등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의무 가입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경찰은 트위터를 통한 불법선거운동을 감시하겠다고 공표했다. 6월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트위터가 화두다. 확실히 정치인들의 관심이 블로그에서 트위터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까지 블로그에 대해서 묻던 정치인들이 올해부터는 트위터에 대해서 묻는다. 합당한 관심의 이동으로 보인다.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에서 뉴스 생산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면 트위터를 통해서 뉴스 유통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디서든 파워는 콘텐츠 생산력 보다 유통력이다. 그런 면에서 관심의 이동은 당연해 보인다. 비.. 2010. 2. 10.
노무현의 마지막 꿈, 그것은 '귀농'이었다 (달콤한 귀농-1) 도시인들에게는 '귀농로망'이 있습니다. '언젠가 귀농(혹은 귀촌)하겠다. / 그러나 농사는 힘 들어서 못짓겠다. / 하지만 벌어놓은 돈이 적으니 돈벌이는 하고 싶다'라는 것이 '귀농로망'의 핵심입니다. 이런 '달콤한 귀농'이 가능할까요? '독설닷컴'에서는 오늘부터 추석연휴까지 전국 각지의 귀농인을 대상으로 한 취재결과를 공개하며 이에 대한 가능성을 짚어보겠습니다. 귀농인 취재 중 고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렵게 사례를 찾아 현장에 가보면 노 대통령이 이미 다녀갔던 곳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노 대통령의 고민은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는 떠났습니다. 그러나 제2 제3의 귀농인들이 '노무현의 못다한 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맨 먼저 전남 함평군의 김요한 .. 2009. 9. 28.
안희정, "김영삼 대통령님 사과하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망발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이 한 마디 했네요. 이런 망발에도 불구하고 냉정을 지키는 안 최고위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일단 원문을 소개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에 병문안을 가서 그나마 밉상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기어이 무덤을 파는군요. 우리가 그에게서 상식을 기대하는 것이,그렇게도 무리한 기대일까요? 곧 주말인데, 마음이 다시 갑갑해지는군요. 김영삼 대통령님,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하십시오! 오늘 오마이 뉴스에 노무현 대통령님 국민장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님의 말씀이 보도되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대통령님의 비서실에서 크게 부인도 하지 않은 채, 불쾌하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 불쾌하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2009. 8. 28.
김대중의 계승자가 되기 위한 정치인들의 혈투 추모 음악으로 ‘목포의 눈물’ ‘만남’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악을 트는 것과 함께 옛 전남도청 앞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에는 특징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분향을 마친 시민들이 상주들과 맞절만 하지 않고 한명 한명 전부 악수를 나누었다. 상주들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생긴 독특한 풍경이다. 옛 전남도청 앞 분향소는 박광태 광주시장이 직접 진두지휘했다. 박 시장은 시청 간부들과 시의회 의원들로 상주 당번을 짜고 자신도 수시로 상주 대열에 끼여 시민을 맞았다. 민주당 의원과 민주당 광주시당도 열심이었다. 시장, 구청장, 국회의원, 광역의회의원, 기초의회의원…. 분향소는 정치인으로 차고 넘쳤다. ‘사자의 권위를 누가 가져가느냐’는 정치인에게 중요한 게임 중 하나다. 광주 전남지역에서는 원래 대.. 2009. 8. 26.
노무현 최후의 인터뷰, "무릎꿇지 않으면 지배당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언론과 일체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습니다. 친노 인터넷사이트 '서프라이즈'의 시사주간지 창간용 인터뷰를 2008년8월27일에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공개되지 못했습니다. 창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프라이즈'가 이 인터뷰를 시사IN 100호에 보내주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집, 의 연장선 상에 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오연호 선배는 재임시절 마지막 인터뷰를 3일 간에 걸쳐 진행했죠.) 총 5쪽에 걸쳐 게재되었는데, 시사IN 100호에서 원문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울림이 컸던 부분을 발췌 요약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은 지배하기가 어렵습니다. .. 2009. 8. 11.
봉하마을에서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 비석 받침에 적힌 문구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된 봉하마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었습니다. 49재 전후에 보고 들은 것을 올립니다. 무척 더운 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와 유골 안장식이 열린 7월10일은 유난히 더웠다. 전날 저녁까지 폭우가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폭염이 내리쬐었다. 검은색 옷을 입고 온 추도객에게 무더위는 피하고 싶은 시련이었다. 폭우에 대비해 가져온 우산은 그대로 양산이 되었다. 그것도 없는 사람은 신문지로 고깔을 만들어 썼다. 신문지도 구하지 못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며 더위를 달랬다. 노무.. 2009. 7. 16.
첫 취재 대상으로 노무현 대통령 유족들을 만나보니... 시사IN 심진용 인턴기자의 첫 취재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 유가족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49재가 열린 봉화산 정토원에서 그는 마지막 길을 나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배웅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유가족들의 모습을 근접 촬영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습니다. 며칠 뒤 그 심정을 정리해서 보내왔습니다. 심진용 기자의 글과 사진을 올립니다. 글 과 사진 - 심진용 ( 3기 인턴기자) 이상한 일입니다. 방에 앉아 컴퓨터 화면에 비치는 사진을 볼 때는 그렇게 눈물이 나더니 막상 바로 앞에서 마주치니 별 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권양숙 여사의 눈물에 아들 건호 씨의 눈물에 딸 정연 씨의 눈물에 당연히 눈물이 나고 목이 멜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추모객의 가슴이 아닌 기자의 머리로(기자 .. 2009. 7. 15.
나는 노무현을 세 번 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날, 상서로운 것이 세 번 보였다고 한다. 후배기자는 운구차가 봉하마을을 떠나는 순간 '흰비둘기' 가 날아들었다고 했다. 사진기자는 영정 위에 날아다는 '흰나비' 를 보았다고 했다. 블로거 몽구는 노제를 지낼 때 '오색채운(무지개구름)' 보았다고 했다. 이제 노무현의 죽음은 신화가 된 것 같았다. 우리 곁에 왔다 간 '생불' 혹은 '예수' 노무현, 나는 노무현을 세 번 만났다. 나는 노무현을 세 번 만났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말할 때, ‘존경하는 정치인’이라는 표현보다 ‘좋아하는 정치인’이라고 주로 쓴다. ‘좋아하는 정치인’, 그것은 권위주의를 무너뜨린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한 호칭이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민은 ‘존경하는 대통령’이 아닌 ‘.. 2009. 6. 4.
사진으로 보는 봉하마을 빈소 첫날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빈소에 직접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봉하마을 입구에서 빈소의 풍경들을 담은 사진을 올립니다. 사진들을 따라가면서 보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이버 조문'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 입구입니다. 자동차로 오시는 분들은 여기까지밖에 차를 가지고 올 수 없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붐비지 않는 시간 이야기고, 현재는 이곳보다 1km 정도 뒤에 주차하고 걸어들어가야 합니다. 마을 입구 표지석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에 '조그만 비석 하나 세워달라'라고 했는데, 만약 세운다면 이곳이 될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모님 묘소입니다. 마을 어귀에 가까이 있습니다. 자주색 타일 지붕으로 되어있는 집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 집입.. 2009. 5. 24.
(봉하 5보)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서 쫓겨난 사람들 어제 하루를 꼬박,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빈소에서 보냈습니다. 주민들과 노사모분들이 격앙되어 있는 상황이라, 빈소에서 쫓겨나는 사람과 내팽개쳐진 조화가 많았습니다. 현장 분위기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아, 한번 정리해보았습니다. 하나, 정치인들이 쫓겨났습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쫓겨났습니다. 정동영 의원도 쫓겨났습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무직인) 한승수 총리도 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민주당 지도부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도부도 역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도 비난을 들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버리고 정몽준에게 간 것 때문에...) 둘, 기자들이 쫓겨났습니다. 조중동 기자들이 쫓겨났습니다. 임시 .. 2009. 5. 24.